Archive for the ‘이슈’ Category
사형.
지금 한국에는 사형제 존폐 논란이 뜨거운것 같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일로 시끄럽게 논란을 벌이고 시간 낭비하는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말이 많은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살인범에게는 용서만큼 무서운 벌이 없다는 소설가 공지영씨의 말을 전해 들었다. 과연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옳지만은 않은 말인것 같다. 상식적으로 그리고 경험상 우리는 용서를 해줬을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과 자신이 저지른 죄가 별것 아닌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최소한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지영씨는 분명 후자는 생각하지 못한것 같다.
나는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봤기 때문에 무슨 생각에서 사형제도 폐지론을 펴고 있는지는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 나온것과 같이 실수로 얼떨결에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분명 맨정신으로 그저 사람 죽이는것이 좋아 죽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번에도 공지영씨는 후자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은것 같다.
편협함이다. 내가 판단하는 공지영씨의 생각과 발언은 ‘편협’이라는 한단어로 압축되는것 같다. 살인범의 심리와 살인동기, 그리고 살인수법이 다양하듯 살인범을 처벌하는 방법또한 다양해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 가족이 용서를 할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듯 사형이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때도 있는것이 아닐까?
반면,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교적 간단한것 같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가져가는 처벌은 비 이성적이고 야만스럽다는 것. 그리고 사형제도 폐지야 말로 ‘선진’이며 ‘앞선’ 생각이라는 밑음이 그들 생각의 기본 바탕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그들과 같은 철저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방법을 쓰든 실질적으로 피해자 가족이 사형집행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것이 가장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피해자 가족이 용서할수 있다면 아무리 흉악한 살인범이라 할지라도 그 누가 처벌할 수 있을까? 물론 살인범을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 가족을 비난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생겨날수도 있겠지만 자기 가족을 살해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할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명이나 될까? 연쇄 살인범의 경우라면 피해자 가족중 한명이라도 용서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형을 집행하는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물론 위와 같은 생각은 일종의 ‘보복’이므로 비이성적이고 구시대적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죄에 대한 벌은 일종의 보복이다. 소매치기범을 ‘구속’하고 교도소에 가두어 놓는것 또한 소매치기 행위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인 보복이라면 보복이다.
같은 살인이라 할지라도 상황과 정도가 다르듯 처벌 또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려면 위와 같은 방법이 적절하지 않을까? 따라서 사형제도의 폐지는 대부분의 살인피해자 가족이 사형수를 용서하고 무기수로 전환시키는 그 무렵이 되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부산물이 되어야 할 것같다.
솔직히 범죄 피해자도 아니며 윤리나 철학자도 아닌 소설가 공지영씨가 국회에서 살인제도 존폐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일이라 생각된다. 범죄로 인해 가족을 잃은 고통은 직접 피해자가 되지 않고는 아무도 알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 ‘밀어붙이기’ 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하는것 같다. 그런데 그 밀어붙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작 사형제도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으니 참 우스운 일이 아닐수가 없는것 같다. 내가 말한 대로 대부분의 살인피해자 가족이 용서할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그날이 될때까지 기다리거나, 그날이 오도록 노력하기 보다는 법으로 사형제도를 폐지시켜 버리고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을 억지로라도 용서 하도록 만들자는것이야 말로 정말 밀어붙이기가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는 분명 그 존재의 가치와 목적이 모두다 잘 살자는 공익의 목적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충분히 오래 살지 않았고 세상을 잘 알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는 그렇다. 인간으로서는 저질러서는 안되는, 도무지 현대 사회의 통념으로는 이해될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 할지라도 정기적으로 헌혈 하게 만들고, 사망시 성한 모든 장기를 기증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들의 존재가 남에게 피해되지 않을수가 있을까 싶다. 무기수로 교도소에서 평생 복역한다 할지라도 국민들의 혈세를 빨아먹는? 기생충 밖에는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고소당한 네티즌?
너무나도 간단한 생각이라 길게 쓰지 않겠다. 항상 그렇듯 오늘도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던 누리꾼인지 네티즌인지 아무튼 그런사람 둘이 고소를 당했다 한다.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라며 매번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 ‘온라인 모욕죄’를 통해 정부가 인터넷을 장악하려 한다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기사가 아닐수 없다.
기사 내용에는 그런말이 없었지만, 나는 기사 제목을 보면서부터 ‘온라인 (인터넷) 모욕죄’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가봐도 명백한 모욕인 이번 일. 인터넷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이런 모욕을 처벌할수 있는 ‘온라인 모욕죄’를 입법시키는데에 반대했던.. 내가 보기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참 궁금하다.
그들이 이 사건을 보고 문제시된 네티즌이 고소를 당하고 벌을 받는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온라인 모욕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셈이 될테고, 그들이 혹여나 네티즌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므로 이것은 고소당하거나 벌 받을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또한 비난을 면치 못할 이런 일은 애초에 온라인 모욕죄를 비상식적인 논리를 들어 반대하지 않았으면 생각조차 할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 모욕죄의 입법시도는 정부가 인터넷을 장악하려는 속셈이라며 반대할때에 이러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것이라면 그것 역시 그들의 짧은 생각과 지식을 드러내는 꼴이 아닐수 없을것 같다. 몇몇 사람이 말하는 것만을 듣고 그대로 앵무새처럼 말과 글을 밷아내는 그런 사람들은 과연 이런 상황이 있을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하고 ‘반대의 물결’에 동참했던 것일까?
아무튼,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의식부터가 바로 서야 하는 만큼, 이런 문제는 단순히 가볍게 넘겨서는 안되는 문제인것 같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역시나 동네축구식 여론몰이에 휩쓸려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것만 같다.
청와대의 여론조작?
청와대 행정관이 보냈다는 이메일로 또다시 청와대가 사람들 입방아에 올랐다. 요즘 자주가게 되어서 한번씩 보는 티스토리 첫 페이지. 민주노총의 성폭행 미수 사건이 있었을때에는 별 내용이 없던 그곳이 청와대의 여론조작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목소리로 하나둘 채워지고 있는것 같다.
인터넷을 이용한 청와대 행정관의 유언의 압력? 행사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수차례 있어왔던 일이다. 그때 당시에도 매번 가볍게 넘어간것으로 기억하기는 하지만, 이번 일을 단순히 구두 경고 조치로 마무리 짓겠다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일인것 같아 보인다.
공산주의는 사람들이 밥먹고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그리고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의 부패가 심해지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질수록 그 고개를 들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경찰청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물러 사퇴 시키는 정부가 이번 청와대 행정관 한명을 왜 이렇게까지 감싸려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웬지 또다른 이유가 있는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청와대 행정관이 그러한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마디로 청와대 컴퓨터가 해킹당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컴퓨터를 해킹하는 사람들이 시스템을 가지고 노는것 보다 먼저 배우게 되는것은 익명으로 메일을 발송하는 방법이나, 시스템 사용자의 명의를 도용해서 이메일을 발송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그정도 해킹은 사실 해킹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금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리눅스 시스템인 이지원은 이미 유출된지 오래다.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컴퓨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인데, 그정도 정보를 가졌으면 가짜 이메일을 발송하는 정도의 해킹을하는데에 별 무리가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나 뿐일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청와대 행정관이 보냈다는 이메일이 어떻게 유출되어 국회의원의 손에 들어갔는지 그 경로에 대한 설명은 도무지 찾아볼수가 없는것도 참 신기하다. 그 이메일 전문은 어떻게 그 국회의원의 손에 들어갔을까?
해킹? 청와대 이메일 시스템을 해킹했더라도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실제로 그런일이 있었다면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지난번 MBC 기자가 군부대에 허위 신분을 이용해 출입한것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억을한것이 아니냐 하는 사람도 많이있겠지만, 정보를 수집하는데에는 정보도 중요하지만 방법도 상당히 중요한 법이다. 국정원이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도청과 감청을 했다면 일제히 비난을 퍼부을 사람들이 MBC기자는 억울하다 하는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것이다.
아무튼, 이메일의 유출과정이 의심스럽고, 실제로 그러한 이메일이 오고 간것이 맞는지 조차 의심스럽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의 ‘구두경고’조치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실질적으로 경찰청장을 자진 사퇴 시킨 일은 한마디로 제것 주고 빰맞는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하지 않아도 될 헛수고였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경찰청장을 사퇴시키기 보다는 사실이든 아니든 이번에 문제가 된 행정관을 문책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몰랐던것 같다. 이제와서 문책을 한다 한들 국민들 화만 더 돋우는 셈이 될테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한편, 우매한 국민들은 민주노총의 성폭행 미수 사건도 이렇게 ‘물타기’되어 덮어지고 있다는것을 모르고 있는것 같다. 국민들은 오른쪽에 공을 던져주면 오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왼쪽에 공을 던져주면 왼쪽으로 우르르 달려가는, 동네축구 하는 아이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지금 나라가 걱정하고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은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누가 이런 공놀이를 하게 만드는것인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런 공놀이를 하고 있는것인지 도무지 답답하기만 하다.
화왕산.
나도 화왕산 정상에 가본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화왕산 정상이 어떻게 생겼고 억새가 얼마나 우거졌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우리 가족이 정상을 한바퀴 돌려다가 배가 고파서.. -_-;; 중간에 억새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도중에 억새 풀숲 속에서 은밀한 행위를 하는 젊은 남녀를 얼마나 많이 발견했는지, 보는 사람도 보여진 사람도 얼마나 민망해 했어야 했는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화왕산 정상에 있는 억새를 태우다가 불이 번져 사상이 일었다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사람들의 억지 주장과 비난은 여전한것 같다. 도무지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없어보이니 말이다.
산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취사행위도 금지되어 있는데 어째서 억새를 태울생각을 했느냐는 사람, 그리고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사가 아니냐는 사람 등 이번에도 역시 ‘공무원’이 사람을 죽인것이라며 몰아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물론 안전관리 소홀의 책임은 있겠지만, 나는 화왕산 정상의 억새를 태우는 행사 자체를 원망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해외에서도 수풀이 우거진 숲은 정기적으로 한번씩 태운다. 물론 일반인이 숲속에서 불을 사용하는 것은 그곳에서도 불법이지만, 불 전문가. 그러니까 소방사들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안전관리를 하여 불을 지르는데, 그러는 이유는 바로 삼림을 더욱더 비옥하게 하기 위해서다. 자연적으로도 숲에는 불이 붙는다. 그런 자연현상을 인간이 들어 막아서고 있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것이기에 재앙을 방지하면서 자연적인 현상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번씩 불을 질러 주는것이다.
화왕산 정상에 있는 억새를 태우는것도 화왕산 정상의 토양을 더욱더 비옥하게 만들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화왕산 정상의 토양이 비옥해지면 억새가 더욱더 많이 자라날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관광자원이라는 것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 화왕산 정상의 억새는 다른곳에서 쉽사리 볼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방문하듯이, 정기적으로 화왕산 정상에 불을 지피는것을 ‘안전하게’ 구경할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국내 관광객은 물론 해외 관광객까지.
따라서 나는 ‘전설’에 따른 화왕산 불지피기 행사가 바보스러운 발상이었다거나 앞으로는 절대 다시 하지 말아야 할 행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광 유람선이 침몰되는 바람에 인명손실이 일었다 해서 관광 유람선의 운행을 영구취소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태도로는 후에 남아나는 관광자원은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는 관광 뿐만아니라 발전할수 있는 산업이라고는 없을것이다.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 다음번에는 사고가 없도록 안전에 만전을 기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 철저한 안전관리는 선진국이나 보여줄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안전관리 지침을 마련해 가는 것도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중 하나다. 또한 사고가 일었을때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 역시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따라서 이번 재앙으로 인해 단순히 행사를 영구 취소함으로 해서 안전관리 요원들의 손을 묶어놓는것 보다는, 그들이 좀더 연구하고 전문가로서 활동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대로 미국의 경우 소방수들은 ‘불 전문가’로 통한다. 단순히 불난곳에 가서 불을 끄는것만 연습하고 습득하는것이 아니라, 불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그들이 가진 불기술의 절정은 계획적인 삼림 방화다. 그러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노하우는 책으로는 도저히 습득할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의 소방수들 역시 ‘불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화왕산 행사와 같은 곳에 깊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관여할수 있도록 해주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재앙을 당했다 해서 단순히 화왕산 행사를 영구 취소하기 보다는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우리나라에 ‘불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것이라 생각된다. 국민들도 역시 ‘불 전문가’가 많은 나라에서 사는것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그런곳에 쓰여지는 돈이라면 국민들의 세금을 써도 아깝지 않을것 같다.
밀가루 졸업식.
졸업시즌이 다가왔다며 밀가루를 뒤집어쓴 학생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못해봐서 괜히 심술을 부리는것인지도. 그렇지만 밀가루를 봉지채 머리위에 쏟아붓는것을 보면서 나는 웬지 즐겁다는 느낌보다는 저 귀한 밀가루를 버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새하얀 밀가루를 봤는데 웬지 내 머릿속에는 아프리카에서 배굶고 있는 흑인 아이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저 밀가루 한봉지면 그 아이가 얼마나 행복해할까,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얼마나 그것을 감시히 여길까 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말이다.
언제부터 그리고 왜 졸업식날에는 으례히 밀가루로 축하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하필 밀가루일까?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 일부러 성대하게 치른다는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도 그렇게까지 축하하지는 않는것 같다. 학사모를 하늘로 던지는 그정도?로 졸업을 축하하고 그들은 그것을 최고의 축하의식이라 여기기도 하는것 같다.
왜 하필 밀가루일까? 다른 방법으로는 축하하면 안되는 것일까? 어차피 버려질 밀가루라면 졸업식 전에 자신이 축하해주고 싶은 친구, 그러니까 자신이 밀가루를 사서 머리위에 뿌려주고 싶은 아이의 이름으로 밀가루 한봉지씩을 기부하는것은 어떨까? 그렇게 학교에서 모아진 밀가루는 꼭 아프리카까지 보내지 않더라도 국내에 있는 이웃을 돌보는데에 써도 좋을것 같다. 말로만 철거민과 같은 약자를 위해야 한다 하기보다는 직접 약자를 돌보는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졸업을 축하하고 사회에 첫발을 딛는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위선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 보다는, 모여진 밀가루로 빵을 만들든 수제비를 끓이든 졸업식날이나 그 전날에, 그 누구도 봉사활동 점수를 매기지 않는 그때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학교주변에 있는 노인정이나 모자원에서 음식과 정을 나누는 그런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수학과 과학 그리고 영어 등 가르칠수 있는 학문은 다 가르쳤다 하여 졸업을 시켜주는 것이니 마지막으로 이웃을 돌아볼줄 아는 마음이야 말로 학교가 가르칠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자 가장 중요한 삶의 지침이지 않을까?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따듯한 졸업식과 졸업 축하야 말로 평생 기억에 남는 학창시절의 꽃이 되지 않을까?
어느덧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못할정도로 풍요로움에 무감각해져 버린것 같다. 친구의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밀가루 한봉지를 쓸수 있다는 것. 불과 50년전만해도 쉽게 상상할수 있는 일이었을까?
친구의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으례히 남들도 다 하는것이라 뒤질수 없으니 남들보다 더 ‘티’나게 일종의 ‘테러’를 저질러 주고 즐거워하는 것 보다는 밀가루 한봉지. 하찮게만 여길수도 있는 밀가루 한봉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칠흙같은 어둠을 밝혀주는 단 하나의 등불이 될수 있다는것. 그것을 배우고 나눔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자리잡아야 할 ‘졸업식 문화’이며 ‘관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보고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반가울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한국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거의 대부분의 블로그, 한국 사람들이 블로깅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정부를 욕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서 속이 뒤집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갈고리 같이 생긴 눈과 마음으로 시시각각 트집잡고 물고 늘어지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 같다. 그들은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자하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것만 같다. 사람 마음이 그리도 꼬부라져 있으니 어찌 편협해지지 않고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꼬부라진것이 오히려 정상인것만 같은 세상이 되어가니 참 큰일이다.
한두명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것은 때로는 무시하거나 생각을 바로 잡아줄수 있지만, 집단적인 생각이 잘못되어 있을 경우에는 상당히 위험하고 바로잡기도 힘든것이 사실이다. 책 National Delusion도 역시 그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사고가 편협해지니 조금만 더 생각하면 자신이 하는 말도 역시 자신이 내세우는 이유나 논리로 금새 반박당할수 있다는것 조차 생각을 못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조각상의 한쪽면만 보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 조각상을 제대로 이해할수 없는것이며 다른 한쪽면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것이다.
건전한 비판은 언제든지 좋다고 생각하지만 편협한 사고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채 피상적인 이유만을 내세워 달려들고 비난하려 드는 습관은 하루빨리 버리는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조각상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다양한 각도에서 조각상을 바라본 다음에 이야기 하고, 글이 적힌 종잇장을 받아들면 앞면과 뒷면을 읽어보고 이야기 하는 습관을 기르는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습관이 몸에 벤다면 그들의 일상생활 역시 좀더 행복해질테니 말이다.
싸이코 패스?
7명을 살해 했다고 하는 강호순은 연일 매스컴에서 싸이코 패스의 기질을 보인다고 보도되고 있다. 싸이코 패스.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정신질환자 라는 말인데, 웬지 모르게 느낌이 찝찝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그리고 ‘인권’을 존종하는 미국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것으로 판가름나면 교도소로 가지 않는다. 대신 정신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고 ‘나온다.’ 맞다. 정신병원에서 평생 갇혀사는것이 아니라 ‘나온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안될법한 범죄자들은 제정신이 아닌 척 연기를 하면서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것이라며 재판부에 사정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를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런 방법으로 정신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나온 범죄자는 아직 매스컴에서 다루어지지 않은것 같다. 그렇다면 강호순이 그 첫번째가 될수도 있을까? 나는 그럴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라면 제정신으로 범죄를 저지른것이 아니니 정신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날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 느낌이 찝찝한 이유는, 이것 모두가 강호순의 작전 또는 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다. 강호순은 바보가 아니다. 절대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처음 붙잡혔을때 차량을 불에 태운것 외에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포맷했다는 기사 내용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경찰이 왜 데이터 복구를 하지 않는것인지, 왜 그런 소식은 없는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강호순은 경찰 조사에서는 당당하지만 일반 대중 앞에 나설때에는 또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능적인 수법을 쓴다고 한다. 그것만 보아도 강호순은 치밀한 지능범이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것이다.
강호순을 싸이코 패스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짐작하는 것이 맞다면 그는 정신질환에 의해 범죄를 저지른것이 아니라 멀쩡한 정신으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했다. 강호순은 지금 자기가 싸이코 패스라 불리는것을 즐기고 있는것 같다. 그러니 책을 쓸 생각을 하고 그 책이 잘팔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에 자식에게 인세라도 물려주겠다 하는것이 아닐까 싶다.
강호순의 외모에 속았던 피해자 처럼, 강호순의 검은 의도에 모두가 속아넘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범죄자 또는 범죄 용의자와 인권.
조선일보 만평을 보면서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봤다. 혹자는 multi-species 라는 말을 하며 인간이 아닌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실 범죄자라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권이 없다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강호순은 이미 범죄를 자백했으며 현장 검증까지 마친 사람이다. 그러나 ‘인권’과 ‘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직까지는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으니 백번 양보해서 살인범이 아닌 살인 용의자로서 생각 해봤다. 살인 용의자 강호순도 인권이 있으니 얼굴공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에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인권이라는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UN 인권 공동 선언문 1조는 다음과 같다.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 They are endowed with reason and conscience and should act towards one another in a spirit of brotherhood.
보다시피 인간은 자유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자유. 인간은 생각의 자유, 거취의 자유, 그리고 발언(이 경우에는 언론보다는 ‘발언’이 나을것 같다)의 자유 등 여러가지 자유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러한 자유는 항상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호순의 얼굴공개를 놓고 얼굴공개는 곧 인권침해, 또는 초상권의 보호는 인권존중 이라는 공식을 내세우는 의견에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이미 법과 경찰이 침해하고 있는 강호순의 인권, 초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무슨일이 있어도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신마저도 간과하고 있는 인권 침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실을 똑바로 보자. 강호순은 경찰에게 붙잡히는 그 순간 그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당했다. 가장먼저, 강호순은 거취의 자유를 빼았겼다. 경찰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하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곳에 가지 못하고 있고자 하는곳에 있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법이 지정하는 구역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그는 분명히 인권을 침해 당하고 있다. 강호순은 생각의 자유도 빼았겼다.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생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고 경찰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고통을 받고 있는만큼 확실히 그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 몇가지를 박탈 당했다.
‘어떤 경우에도 보호받아야 할’인권’이 침해당했다. 이것이 옳은것일까? 아직 선고 받지도 않은 범죄 용의자의 인권을 너무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인권을 침해하면서 까지 유치장에 가둬둬야만 하는것일까? 불구속 수사도 있지 않는가? 아니, 경찰이 사람을 불러놓고 꼬치꼬치 캐 묻고 대답하라 하는것도 인권 침해이니 그를 그냥 가만히 놔둬야 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범죄와 범죄의 경중을 따져 볼때 강호순과 같은 사람은 거취의 자유나 생각의 자유에 대한 인권 침해 정도는 정당하다 생각한다면, 과연 범죄 용의자의 인권침해를 정당화 시키는 ‘수위’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것인지 또다시 되묻지 않을수가 없다.
강호순의 얼굴 공개를 놓고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람들 마저도 강호순의 구속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는 못할것이다. 이미 강호순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면서 ‘어떤 경우에도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며 떠드는 그들은 정말 위선자가 아니라면 바보가 아닐수 없다. 강호순의 얼굴 공개와 인권 논란은 범죄자나 범죄 용의자의 인권침해의 수위가 어디까지가 적절하느냐의 논쟁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인권을 침해 하느냐 존중하느냐의 논란이 일고 있으니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든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이미 깨달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권존중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공익이다. 쉽게말해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잘살자는 뜻을 기초로 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을 해치는 살인범은 특정한 장소에 잡아 가둬두기도 하고, 살인 용의자는 위험하다 하여 구속수사를 하기도 하는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강호순의 얼굴 공개가 모두 함께 행복하게 잘 살수 있도록 하는데에 기여하는 행동인가 하는 문제이며, 그리고 분명 이견은 있겠지만 나는 범죄자의 평범한 얼굴을 공개함으로서 얻어지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그리고 흉악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잃게될 인권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올 그의 얼굴 공개가 공익의 목적을 충실히 실현시킨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것이다.
승리의 조건: 침착함.
수차례 도발을 암시하는 ‘협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다급해진것일까. 북한 노동신문은 경고를 외면하면 군사충돌이 이어질수 있다며 또한번 ‘협박’을 했다한다. 사실 나도 놀랬다. 군사 경계태세를 높인것은 당연한 조치겠지만, 살인 사건 때문인지 신문에서도 북한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았고, 주가도 환율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듯 해서 말이다.
북한의 전쟁시사 발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단연 ‘서울 불바다’ 다. 당시 기억으로는 신문에서 대서 특필을 하고 경제에도 꽤나 악영항을 끼친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일 이후로 우리나라는 가급적이면 북한이 전쟁 발언을 하지 않도록 잘 ‘돌보는’ 방법을 택했는데, 햋볓정책의 영향으로 심지어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도발과 요구에 어쩔줄 몰라 쩔쩔 매는 단계에까지 갔었던것이 아니였나 싶다.
사실 북한이 저렇게 ‘협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불편하기 그지 없는 것이지만, 이제서야 정상적인 원상태로 돌아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아이를 감당못해 쩔쩔 매는 상황이 아니라, 어른이 어른답게 아이를 다루는 상황으로 돌아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북한의 ‘협박’은 너무 잦았다. 그리고 항상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협박’을 해왔었던 만큼 이제는 더이상 그들의 ‘협박’이 통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에도 ‘협박’을 하고 전쟁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지만 아무일 없었고 그들은 매번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전쟁 발언을 하는것이므로 크게 신경쓸 필요없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된것 같다. 남한내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북한의 전략에 동요하지 않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정말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양치기 소년에게도 늑대는 찾아왔듯이 북한이 실제로 도발할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될것 같다. 물론 군인들은 경계태새를 강화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겠지만, 국민들 역시 언제든 전쟁을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하는것이 좋을듯 싶다. 그렇지 않으면 막상 크던 작던 교전이 일어났을때에 겪는 충격과 혼란은 여차하면 전면전을 치루어야 할지도 모를 우리나라로서는 큰 짐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케냐에서는 무료로 배급하는 연료(fuel)을 받기위해 우왕좌왕 질서없이 달려들다가 연료에 옮겨붙은 불로인해 111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사상했다 한다. 전쟁이든 사고든 어떠한 경우에도 침착하지 못하고 패닉(panic)하는 순간 불의의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국민들 스스로 한번쯤은 머릿속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두어서 만일의 상황이 오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도 좋을듯 싶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
나는 소셜 네트워킹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그래서 나는 그 흔한 싸이월드 홈페이지도 다 닫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폐쇄 해둔지 오래며, Facebook 과 같은 서비스도 이용하지 않는다. 메신져도 사용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로지 이메일, 전화 그리고 직접 만나는 것 세가지가 전부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갑갑한 사람 또는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 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직접 만나서 의견을 나누어 본적이 없는 사람과는 (적어도 나는) 지속적으로 통할수가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상과 같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싸이월드와 같은 웹사이트를 꾸미고 일일이 찾아 다니며 ‘관리’해줘야 하는 그 노력이 나에게는 낭비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메신져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은 언젠가는 서먹서먹한 관계. 그래서 점점 대화를 시작하기도 불편한 관계가 되고 나중에는 메신져 리스트에서 삭제 하고 싶은데도 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된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에 경험해서 잘 알고 있다. 싸이월드에서와 마찬가지로 메신져에서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것 역시 엄청난 ‘삽질’이 아닐수 없을것이다.
NYTimes 기사에 소개된 버거킹의 마케팅은 그런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의 최후를 보여주는것만 같다. 버거킹 햄버거의 10분의 1만도 못한 의미없고 껄끄러운 관계가 그토록 많다는 것은 어찌보면 비극이다. 메신져를 켰을때 수십명의 사람이 있어도 정작 대화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은 상당히 비생산적이기도 하다.
나는 메신져에 온라인 상태가 되면 꼭 대화하는 사람만 있는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다 알게되서 메신져에 추가한 사람은 보통 내가 먼저 목록에서 삭제하는 편이었는데, 상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참 못할짓 같기도 하다는 생각. 그리고 항상 대화할 수 있는 목록에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전화나 이메일 아니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니 꼭 메신져를 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메신져를 버려 버리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싸이월드나 Facebook과 같은 서비스도 역시 같은 이유로 쓰지 않고 있기도 한것이다.
싸이월드는 한동안 써 보았지만, 쓰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의 ‘일촌’이나 참 사람 할짓이 아니다. 싸이월드를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예의상 정기적으로 일촌들을 방문해가며 나 왔다 간다는 표시를 남기는 ‘관리’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반대로 내가 싸이월드 홈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은근히 내 일촌에게 그러한 ‘관리’을 요구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역시 사람할짓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이 블로그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예의상 이곳을 왔다갔다 하게 하는 불편을 주기 싫기 때문이다.
“Friends, Until I Delete You”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으로 묶여지는 관계가 얼마나 가볍고 약한것인지 단적으로 잘 말해주는 문구인것 같다. 실질적으로 무의미한 관계 이면서도 쉽게 지울수 없는 고통, 그리고 지우기 까지의 고민, 지우면서 느끼는 일종의 죄책감. 한편으로는 지워지는 수모? 그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온라인 소셜네트워킹은 곧 거품이 빠지고 심지어는 유행이 지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래전부터 나는 ‘친구’와 ‘알고 지내는 사람’을 구분해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친구라는 개념을 조금 특별하게 생각하는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친구란 ‘관리’가 필요없는 존재. 10년 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가도 다시 만다면 옛날 그때처럼 반갑게 만날수 있는 그런 존재다. 친구라면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나를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구분지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나에게 ‘아는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