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냐.

아.. 두부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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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사랑의 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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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때가 있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일치하지 않는때. 의지로는 생각을 움직일수 없어서 고통받는때. 생각만으로는 강력한 의지를 만들어낼 수가 없을때. 그럴때가 있다. 그럴 ‘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랑병인지 상사병인지 하는 아무튼 그런것이 아닌가 싶은데, 얼마전 뉴욕타임즈에서 읽은 기사가 떠오르지 않을수가 없다. 사실 처음 기사를 읽었을때의 느낌은 희망보다는 반감과 절망이 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꼭 그리 반감만 가질게 아닌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는 단지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폭력과 살인이 그렇고, 무분별한 핵폭탄과 복제인간의 제조가 그렇다. 특히 후자의 것들은 과학의 발달로 인류가 얻어낸 능력인만큼 더욱더 조심히 다뤄야할 것들이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나 인간의 신체 외에 사람의 마음도 연구한다. 그래서 기사에 실린 내용 대로 이제는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할 수도, 그리고 사랑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는 세상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한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조절 할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핵폭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능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할수는 있지만 해서는 안되는 것’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어느모로 보나 그것이 무서운 능력이라는 것은 분명한것 같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생각과 의지가 따로 노는 인간이란 참 불편하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가속페달과 엔진이 서로 맞지 않아서(out of sync?)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동차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정말 신이 인간을 창조한것이 맞다면, 참으로 대충대충 만들어 놓은것 같다. 일부러 장난쳐놓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래전 붓다가 희노애락에 대해 죽도록 고민했을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사람의 의지대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즐겁고 싶을 때 즐겁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나고,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반대로 미워하고 싶을때 마음껏 미워할 수 있으며, 공부하고 싶을때 공부생각만 할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때때로 의지가 부족해서 생각을 움직이지 못하는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듣기도 하지만, 상사병의 경우에서 알수있듯이 사람의 생각이란 의지로 조절되는 그런것은 분명 아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람의 의지대로 생각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생각대로 의지라는 것을 쌓아올릴수만 있다면 모든것이 상당히 편리할것 같다. 붓다가 그랬듯 애써 편편한 돌무덤을 찾아,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인간이란 왜 이렇게 불편한 존재인가를 놓고 죽도록 고민할 필요도 없어질테니 말이다.

그러나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맞다.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인위적으로 조종하고 지배할수 있다는것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핵 기술과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위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꿈과 같은 축복이 아닐수 없다. 머지 않아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조절할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을때, 우리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Written by dglee2

January 26, 2009 at 10: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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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ELUSIONS: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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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이것저것 뒤지다가 발견한 책. 그 책 에서 발견한 문구.
내가 멍청하다는 사람들, 바보라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생각해오던 그것을
정확히 짚어 말하고 있다.

NATIONAL DELUSIONS.

In reading the history of nations, we find that, like individuals,
they have their whims and their peculiarities; their seasons of
excitement and recklessness, when they care not what they do. We find
that whole communities suddenly fix their minds upon one object, and
go mad in its pursuit; that millions of people become simultaneously
impressed with one delusion, and run after it, till their attention is
caught by some new folly more captivating than the first. We see one
nation suddenly seized, from its highest to its lowest members, with a
fierce desire of military glory; another as suddenly becoming crazed
upon a religious scruple, and neither of them recovering its senses
until it has shed rivers of blood and sowed a harvest of groans and
tears, to be reaped by its posterity. At an early age in the annals of
Europe its population lost their wits about the Sepulchre of Jesus,
and crowded in frenzied multitudes to the Holy Land: another age went
mad for fear of the Devil, and offered up hundreds of thousands of
victims to the delusion of witchcraft. At another time, the many
became crazed on the subject of the Philosopher’s Stone, and committed
follies till then unheard of in the pursuit. …

from Memoirs of 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by Charles Mackay.

좀비 포스트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미국에서는 저작권이 없는 텍스트라길래..
여기 서버가 미국에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단은 여기다 갖다 붙여 본다. @.@
조만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리든가 해야겠다.

Written by dglee2

January 19, 2009 at 4: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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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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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글 제목에 이끌려 읽게되는 ‘이인식의 멋진 과학’란에 오늘도 ‘미래의 인류’라는 제목으로 흥미있는 글이 올라왔다. 인류의 미래가 어떠할 것이라는 한 생물학자의 추측을 이야기 하고 있는 글인데, 최근 건담을 열심히 시청?한 나로서는 더더욱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수 없는것 같다.

솔직히 미국의 생물학자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했다는 글의 내용은 2000년대 초반에 제작, 방영되었던 일본의 SF 만화영화 건담 시드에 나오는 것들이다. 물론, 지금 한참 방영되고 있는 건담 00에 담긴 내용도 있다. 짐작이지만, 원문을 쓴 미국의 생물학자나, 이인식 과학문화 연구소장이나 건담 시드와 건담 00를 봤다면 이런 글은 낮간지러워서 쓰지 못했을것 같다.

건담 시드에는 coordinator가 등장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이들은, natural이라 불리우는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빠른 reflex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노력만 한다면 natural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빠른 시간내에 할수 있는 능력을 키울수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3대쯤에 이르게 되면 자손 번식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극중에서의 coordinator지도자는 그것을 숨기는 한편, 그것마저도 곧 과학의 힘으로 극복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담 시드에는 natural이면서도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coordinator에 대항하는 존재도 등장한다. 극중에서는 그러한 존재를 단순히 extended 라고 부르는데, 이인식 과학 문화연구소장의 글 내용에 따르면 사이보그가 되겠다. 아무튼, 건담 시드에는 Homo futuris, 사이보그가 등장하고 그들의 존재의미와 인간과의 갈등 그리고 대립이 일단면이나마 잘 그려져 있다.

건담 00에도 역시 innovator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종영이 되지 않은관계로 아직 그 정체가 완전히 밝혀진 상태는 아니지만, innovator라 알려진 극중인물 티에리아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또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볼때, innovator역시 유전자가 조작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innovator의 특별한 능력중 구체적으로 조명된것은,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인 베다와 직접 소통할수 있다는것 정도인데, 그것 외에도 특별한 감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것 같아 보인다는 점에서 건담 시드의 coordinator와 함께 이인식 소장이 말하는 사이보그 또는 포스트휴먼의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

지난주 방영된 건담 00 두번째 시즌 14번째 에피소드를 보면, innovator인 티에리아가 자신은 인간이라고 부르짖으며 다른 innovator를 없애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innovator를 인간이라 해야하는지 아니면 인간이 아닌 또 다른존재. 즉 innovator로 구분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대목이었다. 건담 시드에는 그러한 갈등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조명되어져 있다. 어느모로 보나 natural보다 능력이 뛰어난 coordinator를 두고, natural은 그들을 ‘괴물’이라 부르기도 하고 coordinator들은 natural을 진화가 덜 된 원숭이 취급한다는 일종의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 주고 있다. 물론 그러한 차이와 불만은 전쟁으로 연결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글을 기고한 생물학자나, 이인식 소장이 건담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시간을 쪼개서 꼭 보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하는 말이 고스란히 SF 만화영화에 담겨 있을테니 말이다.

아, 그리고 2020년대가 되면 그 모든것이 가능하리라는 예상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 성급한 예상인것 같다. DNA가 처음 발견되었을 무렵에도, 그리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무렵에도 우리들이 성급한 환상을 가졌던것 처럼 말이다. 그때마다 이제는 유전자를 조작시켜 당뇨도 손쉽게 고치고, 결국에는 불치병이 없는 세상이 곧 오리라 믿었었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당뇨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과학의 발달이 19세기 때만큼 20세기에 활발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19세기나 20세기 초반에 예견했던 과학의 발달 속도에 우리가 따라가지 못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DNA를 가지고 연구하는 방법과 태도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갈피를 잘못 잡아서 길을 잘못들어 선것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과거보다 훨씬 뛰어난 장비와 나보다 열배 백배나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매일같이 연구하는데도 성과가 이정도라면 바보라 할지라도 어떠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쯤은 짐작해야 정상일 듯 하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연구 방법과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자세한 내용은 다음번으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 2020년대에 coordinator와 같은 존재의 탄생이 가능하리라는 것은 쉽게 믿을수 없는 사실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윤리적인 문제만 따져 보더라도 2020년대에 coordinator를 허용할만큼 종교가 무너지지는 않을것 같기 때문이다.

Written by dglee2

January 17, 2009 at 4:58 pm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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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과 흰색 두가지 색이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누군가가 거짓말로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상당히 언짢아 한다. 물론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자신을 속인것에 대해 감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람들이 거짓말에 기분나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가 볼때에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것 같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나는 이 사람을 속일수 있다’라고 생각하기에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잠재의식에 존재하는 생각일지라도 ‘도저히 나는 이 사람을 속일수 없다’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이다. 상대를 속일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달리 말해 자신이 상대보다 한수 위, 또는 조금이나마 더 똑똑하기에 소위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가지고 놀수 있다(manipulate)는 믿음을 갖는것과 다를것이 없는것 같다.

따라서 사람들이 거짓말에 분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았다 라는 사실 보다는 상대방이 나를 하찮게 봤다, 또는 깔봤다라는 사실을 잠재의식을 통해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상대방의 거짓말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경우에는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를 깔보거나 하찮게 생각해서 나를 속인것이 아니라는 판단? 또는 믿음이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기분나빠 하지 않는것이 아닐까? 중요한것은 속고 속이는것에 있는것이 아니라, 속이는 사람이 속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고 또 얼마만큼 존중했느냐에 달려있는것 같다.

Written by dglee2

November 1, 2008 at 2:16 pm

행복한 뇌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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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약 3주전 전화로 어머니와 대화한 내용을 간략히 추려놓은것이다.

사람은 항상 고민거리를 안고 산다. ‘나는 걱정거리가 너무 많다 이것저것 세어보면 서너가지가 넘는다’ 하며 투정부리고싶을때도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만 해결되면 더이상 무엇을 고민할까’ 생각했던것을 막상 해결하고 나서는 이내 곧 다른 고민거리를 끄집어내 ‘이것만 해결되면..’하는 생각을 하는 반복적인 사이클 속에 살고 있다는것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거리가 있다는것은 알겠지만 유독 나만 고민거리가 많은것 같아 보이는것은 아마도 성격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들어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낙천적이고 복잡한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자는 한가지 고민거리만을 품는 반면 성격이 꼼꼼하고 여러가지 신경쓰고 사는 체질인 사람은 그만큼 한번에 품고 사는 고민거리의 갯수가 많을수 밖에 없는것이다. 따라서 나의 고민거리가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은 안그런데 왜 나만 이렇게 고민거리가 많은것인가 하며 불공평하다 생각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정작 문제가 있다면 고민할 거리가 많은것 같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거리를 한꺼번에 품는 자신의 성품에 있는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 특히나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상당히 챙긴다. 예를들어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려 빨리 죽는다는것을 알면 탄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건강은 얼마나 챙기고들 있을까? 요즘들어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지는것을 보면 별로 챙기는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것을 알고 탄 음식은 입속에 넣지 않듯이 어떠한 시각으로 어떠한 생각을 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것을 항상 체크하고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불특정한 생각과 시각을 말한것은 상황과 문제에 따라 그것들이 달라질수 있기때문이다.

예를들자면, 하는 일이 죄다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만 거듭할지라도 자신은 아무것도 할수 있는게 없다는 식의 쓸데없는 무기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것이 중요하다. 탄 음식을 입에 넣지 않듯이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지 않도록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이 가장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만 않은경우가 일반적이니 스스로 정신건강을 챙겨주는것이 중요하다.

역시나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약 3주 전이었던가.. 당시 뉴스위크지에는 뇌건강에 관한 여러 기사들이 실렸다. 그것을 계기로 어머니와 위의 대화를 했었는데 뉴스위크지에 실렸던 어느 한 기사에서나 수년전 읽었던 어느 학술잡지에 기고된 글에서나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행복한 뇌’는 아무런 노력없이 생활해서는 쉽게 얻기 힘든것이다. ‘행복한 뇌’를 논하는 사람들의 논지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알츠하이머와 같은 특별한 뇌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행복하지 않은 뇌’는 건강하지 않다는것이다. 행복한 뇌가 바로 건강한 뇌라는것인데 이 행복한 뇌를 가지기 위해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사람들은 자신들의 ‘몸관리’를 하는만큼은 노력하지 않는것 같다.

Written by dglee2

October 23, 2008 at 9:1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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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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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은 얼마나 빠를수 있을까? 사람의 두뇌는 컴퓨터의 CPU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이 디자인해서 만드는 CPU가 사람의 두뇌와 크게 다를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그렇다 쳐도 상당히 비슷하다. CPU는 항상 속도를 다툰다. 얼마나 빠르게 신호를 처리할수 있는가에 따라서 좋은것과 그렇지 않은것으로 나뉜다. 사람의 두뇌는 어떠할까? 두뇌가 처리할수 있는 단위시간당 최대 생각의 양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에게 명확한것은 눈뜨고 생활하는 주간에는 측정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다. 시각과 후각 촉각 등등 여러가지 ‘신호’를 처리하느라 생각에만 두뇌가 전념할수 없기때문이다. 사람은 잠을 자는동안 때때로 꿈을 꾼다. REM 수면을 취하는 동안 뇌가 무작위로 끄집어 내는 생각을 꿈이라 한다면 사람이 꿈을 꾸고 있을때 활발히 움직이는 안구를 보건대 그 속도는 상당할것 같다. 실제로 꿈을 꾸고나면 때때로 그 꿈이 생생한 경우도 있는데, 순간 깜빡 졸았는데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꿈의 내용은 (예를들어) 1년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빠를수 있다는것을 암시해주는 이러한 경험은 궁금증을 더욱더 증폭시키는것 같다. 어찌보면 잔인하다 생각할수 있겠지만.. 사람의 뇌를 끄집어내서 시각 후각 등등 오감의 ‘입력신호’를 다 제거한뒤 오로지 생각만 하도록 했을때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 측정해보는것도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것 같다. 물론.. 그렇게 잔인한 짓은 실제로 하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아, 어쩌면… fMRI를 가동시켜놓고 그 안에서 실험자가 잠을 자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 경우에도 엄청난 양의 자력에 노출될 실험자가 상당히 불쌍해질것은 불을 보듯 뻔해보인다. 그런 실험은 장시간 가동해도 인체에 해가 없는 장치가 나오긴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못할것 같다.

Written by dglee2

October 23, 2008 at 8: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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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잠자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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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들을 쏟아내다 보니.. 어느덧 나도 잠잘 시간이 다되었다. 내일 또 일어나서 열심히 책과 씨름하고.. 또 밤에 시간이 나면 나머지 내 생각을 여기다 쏟아내자면 잠은 필수다.

그런데…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이 최첨단 21세기에도 ‘과학자’들은 사람이 왜 잠을 자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다들 이런저런 의견을 분분히 내 놓고는 있지만,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것과 같이 모두가 맞장구칠만한 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하고 이쁘장한 대여섯살짜리 애가.. 밤늦게까지 티비를 보고 싶다며 투정 부리며 질문할법한 ‘Mommy, why do I have to sleep?’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 몰라, 그냥 무조건 자’ 정도라는 것이다. -_-;;

Written by dglee2

October 23, 2008 at 1:40 am

존재의 의미.. 그리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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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한번씩 이런 요상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이 세상 모든것이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잠시 길을 잃은것 같은 이런.. 말로는 잘 설명할수 없을것 같은 느낌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울증 환자들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 또는 인간의 존재의미가 없다 생각하여 혼란스러워 하는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집밖에 나 있는 풀한포기의 존재 이유.. 이 우주에서 그 폴한포기가 지니고 있는 존재가치. 그 풀한포기가 존재한다는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까 라는 질문은 한번물꼬가 터졌을때에 머릿속에 미친듯이 맴돌았다가도 매번 궁금해 하고 또 궁금해하다 이내 잊어버리곤 해왔던것이 사실이다.

학교를 왔다갔다 하면서 늘상 볼수 있는 커다란 다람쥐인지 뭔지하는 동물. 때때로 먹을것을 찾아 땅을 후벼파기도 했다가 도토리를 발견하고 열심히 먹어대기도 하고 때로는 어디론가 달려가다가도 중간에 멈춰서서 곰곰히 생각하는 척 하기도 하는 그 동물을 대할때마다 늘상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Beautiful’ 이라는 단어다. 여느 예술가가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perfectly self-contained system을 보고있다는 그 기분은 beautiful이라는 단어 외에 달리 설명할수 없을것 같다.

사람에 비해 저렇게도 자그마한 몸체와 두뇌를 가진 동물이지만 하나의 완벽한 개체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것을 보면 너무나도 신기하다. 현미경 아래 단세포를 보는것과는 무척이나 다른 이 느낌을 주는 이유는 꼭 다람쥐 같이 생겨먹은 이녀석에게도 어떠한 생각이 있을것 같다는 웬지모를 느낌이 들어서다. 먹이를 찾아 헤메기도 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가 또 갑자기 멈춰섰다가 하는 그런 동작은 단순한 automata 라기보다는 어떠한 생각과 판단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것이라 느끼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메바나 오징어와 같은 단순한 동물들은 automata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 자극이 주어지면 그 자극에 반응하는 장치가 움직이는것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다람쥐와 같은 애들은 다르다. 정말 다람쥐에게도 생각이라는것이 있을까? 여태껏 철학자들은 인간만이 생각할수 있는 동물이라 말해온것이 사실이지만 다람쥐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자면 그들에게도 어떠한 생각 있을것만 같다.

Entity. 이 우주공간에는 실로 여러가지 물체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부르는 지구라는 곳에만 해도 사람이 있고 다람쥐와 같은 동물도 있으며 길가에 난 잡초와 같은 것들도 있다. ‘생각’이라는것이 그러한 레벨의 entity에 해당될까? 무색무취의 단계를 넘어서서 도무지 형태나 기타 존재 유무를 따질만한 흔적이 없을것만 같은 이 ‘생각’이라는것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의 범주에 속하는것일까. 잘 모르는 단계가 아니라 하나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단백질과 지방덩어리 따위로 이루어진 피와 살 보다는 어디엔가에 존재하고 있을듯한 이 ‘생각’이라는것이 훨씬 더 가치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생각’이라는것은 무엇일까? Touring machine에서 말하는 configuration과 같이 Neurotransmitter와 Neuron을 인자로 가지는 어떠한 하나의 configuration을 ‘생각’이라 정의 할수 있을까?

뛰어다니는 다람쥐나 그것을 보고 있는 나. 이 단백질과 지방질 덩어리는 생각이라는것을 품고있는 하나의 개체, 다시말해 껍데기이다. 그렇다면 길가에 나 있는 잡초는 무엇일까? 잡초도 언젠가는 썩어 없어지지만 이 생각없는 잡초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이세상 모든것이 어떠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존재하는 의미가 있다면 과연 그것들은 무엇일까? 잡초와 다람쥐, 그리고 나. 모두가 이 우주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실수로 쓸모없는 것들이 만들어져 있는것이 아니라면 제각각 어떠한 존재가치가 있을법도 하지만, 난 아직 이 모든것을 잘 알지 못한다는것이 아쉽다.

Written by dglee2

October 23, 2008 at 12:40 am

대부분의 문제에는 단순하고 강력한 해결방안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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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나 제약이 없는 연구는 없다.
대부분의 문제에는 단순하고 강력한 해결방안이 있다.
신기술은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때에만 가치를 가져다 준다.

한 단어를 바꿔놓긴 했지만 참 inspirational하고 옳은 말이다. 기존의 연구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꽤나 도움되는 글인것 같다. 혹자는 ‘그걸 누가 모르나’라는 말을 하며 상식이라 할수도 있을것만 같은 말. 그런 말이라도 일단 글로 적어놓으면 그 가치가 적어도 조금은 달라지는듯 하다.

뇌과학에는 한가지 크나큰 문제가 있다. 대놓고 실험 해볼수가 없다는 문제다. 사람의 뇌를 끄집어내서 장난쳐볼수도 없는 일인데다 죽어버린 뇌를 가지고 연구를 하려면 포르말린과 같은 실험용액에 쩔어 쪼그라들어버린 뇌세포를 쳐다볼수 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살아있는 뇌를 연구할수 있는 현재의 유일한 방법은 MRI, PET, fMRI와 같은 방법밖에는 없는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기술, 세포에 꼬리표를 달아 위와 같은 장치를 통해 효과적인 연구를 할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사람을 대상으로 그러한 연구를 하기에는 상당히 힘든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오징어나 다른 단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상당히 큰 문제가 있는것이다.

이러한 문제도 ‘대부분의 문제’라는 범주에 들어갈까? 그렇다면 단순하고 강력한 해결방안이 있다는것인데 정말 그러했으면 좋겠다. 물론 생각하고 있는 새로운 해결방안, 그러니까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의 뇌를 연구하고자 하는 방안이 있긴 있지만 ‘신기술은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때에만 가치를 가져다 주는’만큼 꽤나 깊이 여러모로 생각해봐야 할것 같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이것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지금 생각에서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모르겠다… 열심히 하면 그런일이 없을것이라 믿고 있지만, 혹시나 나중에 한참 진행을 하고 난 후에 문제 해결에 부적합하다 결론짓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뿐이다.

아래에 인용해놓은 Nvidia 직원들이 하던 말들이 생각난다. 무엇이든지 새로운것. 세상에 없는것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일단은 시도해보는것이 중요하고 생각대로 안될때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말.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Didn’t work? Move on.
Made a mistake? Move on.”

Written by dglee2

October 21, 2008 at 11: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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