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기록’ Category
블로그 이사.
여러가지가 짬뽕되어 있는 이곳을 무기한 (적어도 당분간) 버려두기로 했다. 대신 티스토리에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 쓰는 블로그 하나, 그리고 맥/코코아에 관한 블로그 하나 그렇게 두개를 더 만들었다.
물론 이번에 새로 만든 DokDo의 공이 크다. 한곳에서 글을 쓰고 포스팅 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DokDo가 없었다면 세개의 티스토리 블로그를 가질 생각은 하지 못했을것 같다. DokDo의 기능을 좀더 늘려서 멀티포스팅 -_-;; 똑같은 글을 두군데에다 포스팅 하기는 그렇고, 이곳에다 새로운 포스트로의 링크를 자동으로 등록시키도록 만들 생각도 32.528 퍼센트 정도는 있는데, 정작 그것을 만들지 만들지 않게될지는 모르겠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1, 2위를 다퉈 검색되는 이곳. 버리기는 정말 아깝지만 솔직히 구글 Adsense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상당히 힘들다.
이 링크를 따라올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한번 링크를 남겨본다.
이런저런 잡다한 사는 이야기 머릿속을 스치는 이야기는 이곳.
그리고 맥과 코코아(터치)에 관한 포스트는 이제부터 이곳에 포스팅 된다.
김기덕 감독 – 비몽.
역시 유튜브에서.. (나는 다운로드 그런것은 하지 않는다.. -_-;; ) 김기덕 감독의 영화라는 비몽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괜찮은 영화다. 사골 국물같이 진한 맛이 나올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번 세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 보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자세히 쓰자면 한없이 길어질것 같으니, 간단히 소감을 기록해두는것이 좋겠다. 내가 제대로 영화를 해석한것이 맞다면 항상 두가지 상반된 심리를 가진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흑의 달콤한 꿈은 백의 악몽이 되고 서로 필연적으로 괴로워 할수 밖에 없는것은 참 슬픈일이다. 나중에는 흑의 행동인지 백의행동인지 조차 모호해지는 그 상태. 그 모든것을 꽤나 흥미롭게 그려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비의 의미 역시 불교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만큼, 그리 여럽기만 한 영화는 아니였다는 생각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의 깊이?는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는 단순히 꽤나 좋았다라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영화내용의 전개가 엉망이라고 까지 하기엔 뭣하지만 역시 좋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뭐랄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혼자 심취해서 횡설수설 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그 내용이 좋고 중요한것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말을 하고자 하는 그 사람과 같은 생각의 프레임?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전혀 알아들을수 없는, 그래서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든것이 무의미 해지고 영화를 보는 시간이 시간낭비 인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이런 영화는.. 최고의 영화라 부르기에는 아마 무리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것이 의도적이였다 하더라도 나는 웬지 이런 영화를 최고라 하면 안될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해석한 그것이 맞다면..) 그래도 이 영화는 비교적 쉬운 영화라서 남녀가 같이 봐도 좋을것 같다. 아마도 내가 사귀는 여자가 이 영화를 보고 ‘뭐야.. 하나도 모르겠네..’ 하면 약간은 실망할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결론은 한번쯤은 볼만한, 그래서 남에게 조심스레 추천해줄 만한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나를 알고 싶어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조금전 브라우저로 접속해 블로그 통계를 봤다. 요즘은 신기하리만큼 클릭수가 많은데에 나름 흥미를 느끼고 있는 터라 조금 자세히 봤다. 어떤 검색어를 사용해 들어왔는지 알려주는.. 유입검색어?이던가.. 아무튼, 그것을 보니 뜻밖에도.. ‘dglee2′라는 것이 있다. 흠.. 내 아이디를 검색했다는 것 같은데… 누구나 가질수 있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나를 검색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구글에서 ‘dglee2′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니.. 이런, 이 블로그는 물론 내가 댓글을 썼던 블로그까지 다 모조리 나오는것 같다. 이런걸 바라지는 않았는데.. -_-;;
나는 이곳의 블로그 통계를 볼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다른곳은 모르겠으나 여기는 정기적으로 누가 찾아오기 보다는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보다 더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네이버에서 그 대부분의 트래픽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내 블로그를 이렇게 잘 검색해 주다니… 고맙다라 해야할까, 매번 볼때마다 놀랍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온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구글에서도 역시 이렇게 검색이 잘 되고 있으니.. 워드 프레스를 사용해서 그런것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웬지 조금은 불안해지는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요상한 느낌이 든다. 물론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포스트를 쓰기도 했고, 여기저기 댓글을 많이 남기며 돌아다닌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내 ‘행적’과 ‘만행’이 쉽게 검색되어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는 인터넷 공간을 활보하고 다닐때 조심해서 다녀야겠다. 등에 칼맞을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나에대해 알아보고자 했었던것 같은 그 사람.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영화 미인도.
물론 돈내고 보지 않았으니 나도 저작권 위반에 대한 ‘공범’으로 몰릴수도 있겠지만, 얼마전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화 미인도와 음란서생을 감상? 시청? 했다.
영화를 보기전 예상했던 것은 미인도 보다는 음란서생이 조금더 선정적이지 않을까, 음란서생 보다는 미인도가 작품성이 조금더 낫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음란서생은 제목 부터가 음란스러우니 지금 생각해도 그런 예상은 할만도 했다 싶다.
그런데 영화는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과 판단이겠지만, 음란서생이 덜 선정적이었으며 음란서생이 더 작품성 있어 보였다. 미인도는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도 추천하고 싶지 않을만큼 실망스러웠다.
음란서생은 코미디는 물론 등장인물의 갈등과 심리를 잘 묘사한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정쟁과 파벌싸움에 지쳐하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가 찾은 최후의 정신적 탈출구가 당시 금지되었던 음란소설이라 한다면 어느정도의 연민과 이해를 구할수 있지 않을까? 혼란스러운 정쟁에서 벗어나는 대신, 음란소설에 몰입한 나머지 그가 가진 거의 모든것을 버려버리는 그를 보면서 적어도 나는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수가 없었고, 음란 소설을 쓰는 그가 미워보이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세상이 답답할 뿐이었다.
반면 미인도에서는 그러한 깊이를 찾아볼수 없었다. 돌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보는것과 같았다. 흐르는 물줄기는 있지만, 강물이나 바다를 바라볼때 느끼는, 그 흐르는 물줄기 속에 무엇인가가 있을것 같다는 기대나, 그 흐름 속에 담겨져 있을 무언가를 가늠해 볼수 있는 구석은 찾아볼수 없었다. 영화는 사건과 사건을 연이어 흘려 내 보내기만 할 뿐이었다.
깊이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피상적인 장면들은 유난히 많았었던 것같다. 확실히 음란서생이나 다른 일반적인 영화 보다는 많았으니 말이다. 유튜브에 업로드 된 동영상에서는 가려져 있었지만, 도대체 그와같은 장면이 영화에 꼭 필요한지 의문스럽지 않을수가 없었다. 영화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본따서 ‘이것을 외설적으로 본다면 당신은 그림/예술을 모르는 사람. 또는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다’라는 핑계를 대고 있는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나 이야기 진행에 꼭 필요했던 요소가 아니였던만큼, 그것들은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를 중간중간에 넣어둔것. 영화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장면이라고 밖에는 이해할수 없을것 같다.
미인도를 보고나서 단 한가지 칭찬하고픈 것이 있다면, 그림에 그려진 그 장면들을 재현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것은 넉넉한 제작비가 있다면 어느 감독이나 다 해낼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깊이도 없는 영화가 몇몇 재현 장면을 제외하고는 볼만한 것은 없다 싶을 정도였으니 감독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돈이 많지만 품위 없는 사람을 졸부라 하듯, 돈은 많이 쓴것 같으나 품위 없고 가치 없는 졸작을 만들어 놓았다고 할수 밖에 없을듯 싶다.
이런 악평이 지난 여름 김민선이라는 배우의 ‘청산가리’ 발언에 영향을 받은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영화 미인도는 단순히 좋지 않은 영화가 아니라 거의 시간낭비 수준의 영화였던것 같다. 아무리 공정을 기해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작년 그 ‘청산가리’ 발언이 아니였다 하더라도 나라면 영화 미인도를 보느니 차라리 대사 한줄 없는 포르노 영화를 보는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뿐이니 이것은 내가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것이거나, 아니면 영화가 정말 졸작이거나 그 둘중 하나가 정답이 아닐까 싶다.
티스토리 블로그 개설.
드디어는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나 개설했다. 새로운 category를 만드느니, 아예 블로그를 하나 새로 개설해버렸다. 진절머리가 나서 떠너온 티스토리에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유는, 이제는 정신을 좀 차리는 사람도 있는것 같아보이기도 하고 또 솔직히 여러모로 티스토리가 약간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워드 프레스는 3GB의 무료 저장공간을 제공하고 광고게제는 차단시키지만, 티스토리는 무제한 저장공간에다 광고게제도 자유자재다. 아, 그리고 티스토리는 무료로 스킨과 CSS파일을 내 마음대로 수정할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티스토리로 가야겠다고 결정한것은 category 정렬방법이다. 워드 프레스는 category 정렬 순서를 사용자가 정할수 없는 반면, 티스토리는 편리하게 해 놓지는 않았지만, 사용자가 순서를 정할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렇게 이점이 많은 티스토리이긴 한데, 그래도 부족한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브라우저에서 글쓰는 에디터가 쓸만한게 없다. 티스토리에서는 두가지 에디터를 쓸수 있는데, 둘다 쓰기 불편하다. 글하나 쓰려면 거의 ‘삽질’을 해야 하는 수준이다.
Tok도 워드 프레스를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탓에, 티스토리와는 잘 맞지도 않는다. Tok을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티스토리 블로깅을 할텐데 손을 대기가 싫으니 참 큰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내가 생각하는 일상을 블로그에 다 기록하지 못함을 최근에 자각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나 더 꾸릴까, 아니면 이곳에 또다른 category를 만들어 포스팅을 할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따로 블로그를 하나더 꾸릴것인가 하는 문제는 솔직히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여기다 해도 좋고 따로 하나를 더 만들어도 좋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작 힘든일은, 이름 붙이는 일이다. 새로운 블로그를 만들든 만들지 않든 지금 내가 블로깅 하려는 것들을 넣어둘 category명을 무엇으로 해야할지 상당히 고민스럽다.
나는 항상 이름을 지을때가 되면 고민한다.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새로운 객체를 만들때에도, 새로운 함수를 만들때에도 이름을 무엇으로 해서 붙일까 상당히 고민한다. 부끄럽지만 어떤때에는 실제 코딩하는 시간보다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이름 붙이는것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쓴다.
내가 원하는 이름은 누가 봐도 한눈에 무엇인지 알아볼수 있는 그런 단어.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줄수 있는 그런 단어나 문구다. 그러면서 아래위 category나 객체와의 상관성까지 고려해야 하니… 쓰고 보니 좀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는 있는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이름 붙이기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프로그래밍을 할때에는 코드를 나눌때 다른사람을 위해서도 이름 붙이는데 신경을 써야한다 하지만, 내가 이름때문에 고민하는 이유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유다.
나에게 이름을 붙인다는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 나갈것인가를 결정하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적절한 이름을 붙여놓는다면 항상 그 이름을 볼때마다 처음 내가 계획했던 그 취지를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알수 있을테니 적절한 이름붙이기는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것이다.
이렇게 이름붙이기에 힘들어 할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도대체 내 아이 이름은 어떻게 붙일까? 하는 것인데, 내 이름을 붙여준 부모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작명가는 지금 내가 하는 이런 고민정도는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모르겠다. 사람의 이름은 이름일 뿐 그리 중요한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사물이나 사물을 분류하는 이름은 이름 그 자체로서 그것의 성질이 판가름 나는 만큼 상당히 중요한것 같다. 이름붙이기. 이것이야말로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말빨 좋은사람.
인터넷이 이렇게 해서 발달한것일까. 링크를 따라 다니다 보면 끝없이 읽을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블로그 “Open Sauce“에서 “급진적 생물학자 Radical Biologist” 또다시 거기서 “임시연습장” 으로 옮겨가며 글을 읽어댔으니 말이다.
세개의 블로그 중 내 눈을 끌었던 것은 “급진적 생물학자 Radial Biologist”였다. 어떤 특별한 내용이 있을까 싶어 글을 읽어보았더니, 기대와는 다르게 별 내용은 없었다. 뭐랄까, 할 말이 많아서 길게 써 놓은것이 아니라 한두마디로 압축할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길게 써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아무튼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듯한 노력이 상당히 보이는, 그래서 복잡하게만 쓰여진 글이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의 말은 간단히 말해서 자연과학은 학문의 성격상 객관성(objectivity)을 확보하기 쉬운 반면 사회과학은 그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객관성을 확보할수 있기에 자연과학은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을때 그것이 받아들여지기가 쉬운반면 사회과학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만한 이 사실을 애써 포장해서 말하고 있는 ‘급진적 생물학자’의 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옳은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리학의 중력과 원심력, 그리고 그 유명한 (미)생물학?의 파일로리균의 발견은 자연과학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프레임 뒤집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이 아닌 언어학 분야를 보면 아기의 언어 습득과정에 대한 스키너의 주장을 뒤집어 엎은 촘스키의 발언은 엄청난 관심과 함께 빠르게 학계에서 받아들여졌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힘들기에 프레임 뒤집기가 어렵다는 ‘급진적 생물학자’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급진적 생물학자’는 용어에서도 상당히 뒤쳐지는 지식수준을 보여주고 있는데, 영문으로 말해놓은 두가지, ‘양(quantity)’과 ‘조작(operation)’이라는 용어는 내가 처음보는, 상황에 맞지 않는 용어들이다. 처음에는 그런 용어도 쓰나보다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그의 다른 포스트를 보면 ‘조작이라는 말을 영문으로 하면 대충 operation쯤 될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대충 자신이 선택한 단어라는 뜻인데, 틀린것이 맞다. 그런 의미로는 거의 쓰지 않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manipulate 이다.
양(quantity)이라는 용어 역시 ‘급진적 생물학자’가 말하는 상황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이것역시 처음에는 내가 부족하여 이해를 못하는것인줄 알았더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듯 싶다. 양(quantity)이라는 말은 사회과학에서 통계를 사용하면서도 아주 많이 쓰이는 용어다. 따라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구분짓는데에 양(quantity)라는 용어를 쓰는것은 틀리지 않았다면 상당히 부적절하다 할수 있겠다.
‘급진적 생물학자’의 아마추어적인 발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GMO에 대해 쓴 다른 포스트에서는
…몇개의 유전자를 조작한 식품을 먹는다고 해서 우리의 몸에 큰 이상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라 믿어도 좋다. 적어도 프리온은 위장을 통과해 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지만, DNA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므로 안심해도 좋다. 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작물에 심은 유전자가 프리온 단백질의 특성을 가진 것도 아님으로 안심해도 좋다…
라고 하고 있는데, 정말 ‘급진적 생물학자’가 생물학자가 맞고 옳은 과학자라면 저런 글을 쓰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프리온은 단백질이고 DNA는 Acid. 산이다. 그것 두개의 ‘작동’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고, 정작 GMO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것은 조작된 유전자(DNA)를 섭취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작된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정체불명의 단백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그가 옳은 과학자라면 프리온의 특성을 가진 단백질이 없다고 해서 안전하다 단정할수도 없었을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것에 길들여진 자연과학자는 “임시 연습장”의 포스트에 잘 나와 있듯이 ‘우리가 잘못봤을 수도 있고, 우리의 설명 프레임이 틀렸을 수도 있다’라는 겸손을 보일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정적으로 ‘안심해도 좋다’라는 말을 꺼리낌 없이 한다는 것은 ‘급진적 생물학자’의 과학자적인 자질이 의심되는 부분이라 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다.
얼마전 NYTimes에 재미있는 Essay가 실렸다. 에세이를 읽어보면, ‘민주주의 없이는 과학이 없고, 과학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정치적인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급진적인 생물학자’의 여러가지 포스트를 보면서 나는 적어도 그의 머리속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그래서 그에게 과학이 없는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앞서 말했다 시피 그에게서 과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 판단도, “임시 연습장”의 포스트가 지적하고 있는 그대로 우리나라 이공계에는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급진적 생물학자’의 글을 가만히 읽고 있자면, 자신의 유식을 떠벌리고 싶어 안달한 나머지 장황하고 거만한 그리고 일방적인 설교를 하는 그 앞에서 틀린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설교를 듣고 있을 하급자?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말빨’이 좋은 사람 모두가 다 나쁘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급진적 생물학자’는 ‘빈깡통이 요란하다’는 그 말이 아주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래디컬 바이올로지”라는 항목아래 생물학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들을 잔뜩 쌓아놓은 그를 보고 있자면 웬지 내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만 같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
나는 소셜 네트워킹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그래서 나는 그 흔한 싸이월드 홈페이지도 다 닫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폐쇄 해둔지 오래며, Facebook 과 같은 서비스도 이용하지 않는다. 메신져도 사용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로지 이메일, 전화 그리고 직접 만나는 것 세가지가 전부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갑갑한 사람 또는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 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직접 만나서 의견을 나누어 본적이 없는 사람과는 (적어도 나는) 지속적으로 통할수가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상과 같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싸이월드와 같은 웹사이트를 꾸미고 일일이 찾아 다니며 ‘관리’해줘야 하는 그 노력이 나에게는 낭비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메신져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은 언젠가는 서먹서먹한 관계. 그래서 점점 대화를 시작하기도 불편한 관계가 되고 나중에는 메신져 리스트에서 삭제 하고 싶은데도 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된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에 경험해서 잘 알고 있다. 싸이월드에서와 마찬가지로 메신져에서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것 역시 엄청난 ‘삽질’이 아닐수 없을것이다.
NYTimes 기사에 소개된 버거킹의 마케팅은 그런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의 최후를 보여주는것만 같다. 버거킹 햄버거의 10분의 1만도 못한 의미없고 껄끄러운 관계가 그토록 많다는 것은 어찌보면 비극이다. 메신져를 켰을때 수십명의 사람이 있어도 정작 대화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은 상당히 비생산적이기도 하다.
나는 메신져에 온라인 상태가 되면 꼭 대화하는 사람만 있는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다 알게되서 메신져에 추가한 사람은 보통 내가 먼저 목록에서 삭제하는 편이었는데, 상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참 못할짓 같기도 하다는 생각. 그리고 항상 대화할 수 있는 목록에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전화나 이메일 아니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니 꼭 메신져를 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메신져를 버려 버리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싸이월드나 Facebook과 같은 서비스도 역시 같은 이유로 쓰지 않고 있기도 한것이다.
싸이월드는 한동안 써 보았지만, 쓰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의 ‘일촌’이나 참 사람 할짓이 아니다. 싸이월드를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예의상 정기적으로 일촌들을 방문해가며 나 왔다 간다는 표시를 남기는 ‘관리’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반대로 내가 싸이월드 홈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은근히 내 일촌에게 그러한 ‘관리’을 요구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역시 사람할짓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이 블로그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예의상 이곳을 왔다갔다 하게 하는 불편을 주기 싫기 때문이다.
“Friends, Until I Delete You”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으로 묶여지는 관계가 얼마나 가볍고 약한것인지 단적으로 잘 말해주는 문구인것 같다. 실질적으로 무의미한 관계 이면서도 쉽게 지울수 없는 고통, 그리고 지우기 까지의 고민, 지우면서 느끼는 일종의 죄책감. 한편으로는 지워지는 수모? 그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온라인 소셜네트워킹은 곧 거품이 빠지고 심지어는 유행이 지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래전부터 나는 ‘친구’와 ‘알고 지내는 사람’을 구분해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친구라는 개념을 조금 특별하게 생각하는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친구란 ‘관리’가 필요없는 존재. 10년 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가도 다시 만다면 옛날 그때처럼 반갑게 만날수 있는 그런 존재다. 친구라면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나를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구분지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나에게 ‘아는사람’일 뿐이다.
건담.
건담은 로보트 전쟁 만화다. 그런데도 내가 이 건담이라는 만화에 빠지는 이유는 로보트 태권 V와 같은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담 시드도 역시 그러했고, 건담 00도 역시 오늘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거리를 던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건담 00 두번째 시즌 16번째 에피소드를 보면서 새로 바뀐 엔딩을 보게 되었다. Yuna Ito라는 노래 정말 잘부르는 가수가 부르는 정말 좋은 노래 Trust You외에, 비극으로 끝날것만 같은 건담 00를 발견했다. 16화 제목이 비극의 전주곡이기는 했지만, 건담 00의 결말이 비극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였을까, 상당히 씁쓸했다.
그러고 보니, 건담 00는 비극으로 가는 길을 하나씩 착실히 만들어 오고 있었던것이 아닌가 싶다. 건담 시드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것으로 끝이 났는데, 아마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단히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절친한 친구인 Kira와 Athran은 서로 자기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싸우다가 서로를 죽이려 하기까지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과거에 연연해 싸우는것은 다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건담 00에서는 여태껏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던것 같다.
과거의 아픔에 사로잡혀서 싸우는것은 의미없다는 말, 아무리 싸워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그렇게 과거의 아픔에 사로잡혀서 미래마저 파괴시켜버리고 마는것이 진정 원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건담 00에서는 서로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서로 싸워 이기려고만 한것이 사실이었다. 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상대를 제압하려 했고, 상대는 매번 더 강력한 신형 무기로 맞서기만 했다.
나는 Kujo(Sumeragi)와 Kati의 과거를 알고난 뒤로 그들이 과거를 되풀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아군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그것을 모른채 전쟁을 해버린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재현하고 있는듯 해서 아직까지도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건담00 에는 건담 시드에 등장했던 Lacus와 같은 인물이 없다는것이 안타깝다. Kujo나 Kati나 그들이 정작 바라는것은 전쟁이 아닌데도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없어 어느 하나가 쓰러질때까지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전쟁을 없애고자 했던 Aeolia Schenberg의 계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건담이라는 막강한 무력을 이용해 전쟁을 없애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전쟁으로 전쟁을 없애겠다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기가 힘든것이었다. 힘으로 제압하려 했던만큼 상대는 그만큼 힘을 키워갔고, 또다시 그것을 제압하기 위해 신무기를 개발하는 악순환만이 반복됐다.
Ribbons의 계획은 무엇일까? Aeolia Schenberg의 계획을 유일하게 알고 있을것만 같은 Ribbons는 왜 Aeolia를 제거했을까? 계속해서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더욱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것 보다, Ribbons의 계획대로 하나의 강력한 세력만이 존재하게 되면 전쟁이라는것이 없어질까? 어떻게 보면 건담을 만들어내서 상대를 제압하려 했던 Aeolia가 원했던것도 그것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Ribbons가 Aeolia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튼,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가지 의문점은 많지만 한가지 분명한점은 서로 각자의 꿈과 이상, Kira가 말했던것 처럼 나쁘게 말하면 욕망 만을 쫓을 뿐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거나, 지금과 같이 싸우기만 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될것인지 생각하려는 노력이 없다는것이 조금씩 비극을 만들어 온 주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친부모를 제손으로 총살 시키기까지 했던 만큼,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싸운다는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Setuna 자신이 더 잘 알면서, 아직까지 ‘distortion in the world’를 찾지도 못한채 계속해서 의미없는 전쟁만을 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것을 멈춰줄 사람도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미래를 파괴시키기만 하는 그런 의미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일까.
잘못 짚으신것 같습니다…
애번 재미있는 소식을 전해주는 변지석 교수님의 블로그를 구경하다 보면, 종종 내 생각과는 꽤나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일일이 Comment하자니 뭐.. 내가 봐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또 그냥 보고 있자니 괜히 답답해지기도 하는것이 사실이다. Comment를 한다 해도 딱히 어떠한 대화가 오가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처음 Comment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와인이야기 포스트에서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만큼, Comment를 남기게 되면 괜히 장문이 되게 되는데 나 역시도 매번 그것이 부담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해서, 최근 공권력에 대한 포스트 아래 간단히 Comment를 남긴 것, 그리고 몇가지 Comment남기고자 하던것을 ‘여기에다가’ 조금 자세히 기록해 두고자 한다.
선진국과 같이 규칙을 잘 지키는 사회가 되는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Whole Foods의 경우는 조금더 깊이 생각 해볼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Whole Foods의 직원은 절도범을 붙잡기 위해 ‘고객’의 몸에 손을 댔고, 경찰은 도심지에서 위험한 전쟁놀이를 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됐다.
Whole Foods의 직원은 고객의 몸에 손을 대지 마라는 규칙, 경찰은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Whole Foods가 직원을 해고한것이 옳다는것은 어찌됐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경찰도 ‘규칙’을 어겼으므로 문책당하는것이 옳다는 말이 될수 밖에 없는것이다.
Whole Foods의 그러한 조치 이후, 절도범을 목격하고도 절도범을 잡으려는 Whole Foods의 직원이 있을까? 위와 같은 이유로 경찰을 문책한다면 도심지에서 전쟁을 하는 시위대를 진압 하고자하는 경찰이 다음번에는 있을까?
문제는, Whole Foods 매장에서 과일을 훔쳐가는 사람도 ‘고객’인가 라는 문제, 도심지에서 전쟁을 하는 시위대가 ‘선량한 시민’인가 하는 것이다. 혹자는 오늘의 절도범이 내일의 고객이니 고객이라 하기도 하고, 또 도심지에서 전쟁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살길이 막막했던 ‘선량한 시민’이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물건을 구매할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 특히나 절도를 위해 매장에 들어온 사람을 ‘고객’이라 할수 있는가, 다른 ‘선량한 시민’을 위협하는 사람을 ‘선량한 시민’이라 할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역시 남는다.
이제 문제는, ‘딱히 어느 관점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느 관점이 상황에 더 적절한가’가 된다. 그리고 사회 지식/지도층은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하는것이다. Whole Foods의 경우는 절도범이 훔쳐가서 손해보는 과일 값보다 절도범을 잡기 위해 혼란을 일으킨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으니 해당 직원을 해고했을 것이다. 앞으로 절도범이 있더라도 직원들이 제지 하지 않을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따라서 Whole Foods의 경우는 절도범도 역시 ‘고객’으로 보는 상황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것이다.
이번 용산에서 발생한 사고는 어떻게 봐야 좋을까? 사회 규범이 서고 규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위해서는 Whole Foods의 경우와는 달리 그들 시위대는 더이상 경찰이나 공권력이 보호해야할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고 보는것이 상황에 맞는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다음번에 그러한 시위대가 있을때에 경찰이 정말 ‘선량한 시민’을 보호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괜히 복잡하게 만드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것 같다. Whole Foods의 경우 외에도 그리 간단히 볼수만은 없는 것은 또 있다.
의미없는 안내판에 관한 포스트를 살펴보면 정말 재미있는 안내문구, 경고문구들의 예가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단지 무의미한 것들일까?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무의미해 보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도 그것들이 정말 무의미한 것들일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뜨거운 자동차 엔진의 열을 이용해 옷을 말리거나 젖어있는 애완견의 털을 말릴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만, 세상에는 상상하지도 못할만큼 몰지각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은 멍청한 짓을 해 놓고도 끝까지 자기가 잘못한것이 없다며 소송까지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승소하기도 하는것이 현실이다.
이래도 그런 경고문구들이 없어져야 할 무의미한 것들일수 있을까. 소송에 휘말려 입게되는 손해를 감수하기 보다는 멍청해 보이는 문구 한두마디 새겨 넣는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던 기업들이 그런 문구를 쉽사리 없애고자 할까? 단순히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문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것 보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것이 옳은 수순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vandalism을 방지하기 위해 정책을 바꾸고자 하는 위키피디아는 정확성을 위해 신속성을 포기했다라고 하기보다는, 순수한 집단지성의 이상? 목표?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포기하려 하고 있다라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어디까지나 사전이며, 시간을 다투는 신문이나 방송과는 성격이 다른 매체이기 때문이다.
항상 정확성과 신뢰성이 문제시 되어온 위키피디아가 바꾸고자 하는 정책은 한마디로 특정한 권한(authority)을 가진 집단이 생기고 나름의 ‘필터링’을 하겠다는 것이기에 중요한것이다. 말하자면,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시민 발언대에 누구나 서서 이야기 할수 있다 했다가, 유언비어를 흘리는 사람이 생겼고 그것을 감당할수 없다 판단했기에 이제는 말할 내용을 사전에 알아보고 적절한 발언을 할 사람들만 추려내어 시민 발언대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순수한 의미의 집단지성의 실패, 패배를 인정하는것이며, 사람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것이 최선이 아니라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키피디아를 목격하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것은 위키피디아의 신속성이 아니라, 너무나도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국내 인터넷 게시판과 게시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