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냐.

아.. 두부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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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 주소 – 집단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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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해외에서 시작된 수많은 것들이 대한민국에 상륙하면 이상하게 변질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듯, 집단지성 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의 흐름을 볼때 올바른 집단지성이라 함은, 위키피디아 처럼 정보가 점점 권위적이고 올바른(authentic) 방향으로 수정되고 보다 더 자세한 정보가 더해짐으로서 정보의 깊이가 깊어지고 내용이 풍부해지는것을 말한다 할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보는 흐르되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의해 정보가 증폭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복사되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해 정보가 증폭되는 경우는 지난 여름의 경우만 해도 잘 알수 있다.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이 여대생을 목졸라 죽였다’ 또는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이 방패를 이용해 여대생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크게 흥분했었다. (그런데 왜 매번 여대생일까? 이상하게도 남자 대학생이나 어느 노숙자가 다쳤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아무튼, 이것은 사실과 소문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경의 강경한 시위 진압이라는 정보가 소문에 의해 잘못 증폭된 모범적인? 경우라 할수 있을것이다.

소문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것은 웹2.0가 대한민국에 정착하지 못한 큰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웹2.0의 대표격이라 할수 있는 위키피디아는 중요한 구절구절마다 reference를 붙여놓았다. 당연한 일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웹에 흐르는 정보는 모두다 옳은것이 아니며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되는것이라는 기본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 해 놓은것이다.

반면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은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만을 읽고 그 ‘글’에서 말하는것이 사실인양 그냥 다 믿어버린다. 위키피디아와 같이 reference를 따로 붙어 있는것이나 그렇지 않은것이나 구분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따라서 번거로운 위키피디아와 같은것은 필요없는것이다. 물론 reference가 없는 게시판 글의 내용을 믿고 말고는 그때그때 자신의 기분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에 근거하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글에서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무시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그리고 정보가 믿을수 있는 정보인지를 판가름하는 능력이 전무하다 시피 한 결과, ‘언론’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단순 소문에 근거해 기사를 써 내는일도 이제는 허다하다.

대한민국에서 볼수 있는 또다른 형태의 정보 흐름은 ‘복사’다. 글자 그대로 복사하는 경우도 많지만, 지금 내가 말하자고 하는것은 ‘생각의 복사’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이 생각해서 옳다 또는 좋다라고 생각되는 글을 읽었을때 대부분의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읽었던 그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는것으로 인터넷 블로그를 꾸미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추가하고 있다. 추가적인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고, 있다 하더라도 한두문장에 그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이유는 아마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 하게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은 자기편이 아니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하는 몹쓸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공격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 섣불리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자신만의 생각마저도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리는것이 아닌가 싶다.

공격받지 않으면서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활동할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복사’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공격하지 않은 글,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읽었던 글,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글이나 생각을 ‘복사’해서 다시 쓰면 자신이 공격받을 확률도 당연히 줄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정보의 ‘복사’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게 되고 그러한 생각의 편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고 급기야는 세뇌의 수준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고라나 티스토리와 같은 전형적인 한국 인터넷 사용자가 많은 곳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욕을 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환영은 고사하고 살아남기 힘든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복사’를 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복사를 해가면서까지 인터넷에서 활발히 활동하기를 원하고 때때로 아무른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는 이유는 바로 ‘한번 떠 보고 싶은 욕구’때문이다. 지난 여름 괴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한번 떠 보고 싶어서 그랬다’며 경찰서에서 진술하는것을 보면 그 ‘욕구’가 얼마나 강한것인지 알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위키피디아와 같은 집단지성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위키피디아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만, 누가 자신이 읽고 있는 위키피디아의 페이지를 쓰고 수정했는지 알고싶어하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위키피디아를 읽는 사람은 단지 그 내용이 올바른지 믿을만한 것인지 reference를 참조해 판단할 뿐, 누가 썼는지는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웹2.0가 왜 한국에서는 실패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낼수 있을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닌것은 확실한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 무엇보다도 확실한것은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없는것은 올바른 지성과 용기, 그리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헌신이라는 것이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31, 2008 at 2:5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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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 주소 –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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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brain wash라 하는 세뇌는 말 그대로 머리속의 생각을 깨끗이 비우고 다른것으로 채워넣는.. 그래서 한가지 방법으로만 생각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냉전시대에는 공산당이 아이들을 세뇌시킨다느니 스파이를 잡아다 세뇌시켜 이중간첩으로 이용한다느니 하는 말이 많았었지만,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알게 모르게 세뇌당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한가지 방법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사람의 말과 행동을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상대가 말하는 내용보다는 의도를 먼저 파악하려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 미국 대선중 부통령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상대의 의도를 캐 묻기 보다는 상대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했다. 상대의 의도가 어떤것이든 특정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적절한 이유나 근거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이용하는 많은 한국사람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은 거의 항상 의도를 먼저 파악하려 든다는것을 알수 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상대의 의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글의 내용에 상관없이 난색을 표하거나 반대를 일삼기가 일쑤다.

내가 아는 못난 사람들은 편가르기를 좋아한다. 편을 갈라 놓고는 무조건 자기편이 옳다고 우기는 한편 자기편을 나쁘다 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헐뜯는다. 또다시 지난 미국대선을 이야기 해야겠다. 파월 전 국무부 장관이 오바마 지지 성명을 표했을때, 파월 전 장관을 보고 ‘배신자’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예를들어 민주당에 속해있는 이름있는 인사 한명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은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지한다 했으면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상대의 의도가 아무리 불순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기분이 나빴다 하더라도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정당한 근거가 있다면 하는 수 없이 혼자 화를 삭이는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가 무언가를 분명히 잘못했기때문에 당해야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부정 선거를 저질러 놓고도 당신들이 나에게 죄를 묻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따져 묻는 사람들은 허다하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함에도 당신의 의도가 의심스럽기 때문에 나는 죄를 지었지만 벌받기 싫다고 생떼쓰는 것을 보면 도대체 저사람들 머리엔 뭐가 들었을까 상당히 의심스럽기만 하다.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말 내용의 옳고 그름을 냉정하게 먼저 따져보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는 한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을 피하거나, 대한민국에 올바른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힘들것 같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31, 2008 at 12: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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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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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다. 물론 나는 그때 당시 대선 투표를 할수도 없었지만, 노무현이 당선되는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었다. 물론 당시 이회창 후보가 딱히 좋아보였던것은 아니지만, 희안하게도 노무현이 당선되는것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미쳤구나 생각했었다. 그래도 처음 임기를 시작하면서 청와대 홈페이지를 개편하는것을 보면서 그나마 뭔가 나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실망스럽기만 했던것이 사실이었다. 역시나 처음 내 생각대로 대한민국 국민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자살. 내게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것은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이다. 부산과 같은 광역시의 시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와서 자살을 했다는데.. 나는 그런일은 처음듣는것이었다. 문민정부 시절 이전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도 그런일이 없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는 양 으시대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일이 일어나는것인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기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은 2006년도 통계를 보면, 2000년 이후 자살한 고위공직자 13명중 9명이 노무현 정권에 자살한것으로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었을까.

만두. 두번째로 희한한것은 만두파동?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만두소가 트집잡혀 온통 전국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다. 그런데 이른바 만두파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선거 자금과 관련해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너희들도 불법자금 쓰지 않았냐 라며 공격했고.. (물론 이것역시 옳은것은 아니다.) 당시 입가벼운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쓴 불법 선거자금의 1/10이상을 자기가 불법선거자금으로 썼다면 대통령을 그만두겠다 했었다. 뭐.. 천원을 훔쳐도 절도, 만원을 훔쳐도 절도는 절도행각인데, 불법선거자금을 쓴것이면 쓴것이지 1/10을 쓰고 안쓰고를 따지는것도 꼭 초등학생 같은 발상이지만 아무튼, 만두파동이 일어나기 직전 검찰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쓴 불법 선거자금이 1/10을 넘어서는것 같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었다는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것 같다. 물론 검찰에서의 소식은 한두달간의 만두파동에 묻혀서 그 이후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만두파동 역시 지난 여름 광우병 소동처럼 헛소문과 호들갑 스러움의 극치였다. 만두파동의 원래 이야기는, 만두소에 포함되는 무의 재료로 김밥용 단무지를 절단하고 남은 단무지를 사용했다는것, 단무지이기 때문에 소금기를 빼기 위해서 물에 담궈야 했는데, 그 물이 우물물이라 식중독균 등에 만두소의 무 재료가 노출됐다는것 정도다. 그것이 말이 흐르고 흘러 썩은 무를 갈아서 넣었다느니 하는 엉뚱한 헛소문으로까지 번지고 결국에는 만두 제조업자들 몇명을 역시 자살로 이끌었던 사건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 있었는데, 난 솔직히 만두가 싸게 나오나 싶어서 만두사러 다녔었다.. -_-;; 식중독균 그런것은 고온에서 죽기 때문에, 잘만 요리해서 먹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지난 노무현 정권은 이래저래 부패하고 썩은 기운이 처음부터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도대체 왜 그것을 보지 못하는지, 그리고 보지 못했는지 나는 아직도 궁금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상주의자 라는것이다. 이루어지지도 못할 이상을 쫓는 그 사람들은 책에 쓰여져있는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을 믿는 사람들이다. 뭐..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런 세상을 믿는 자신들은 스스로 우월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것 같아보이기도 하는데, 적어도 내눈엔 산타클로스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 미성숙한 어린아이들과 별반 차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그런 어린아이들 같이 잘 속는것만 봐도 그런것 같다.

요즘 환율방어를 하기 위해 달러를 사용하는것에 대해 노무현을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위대한 노무현 대통령이 쌓아 놓은 엄청난? 외화국고를 낭비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런말을 하는 사람들 역시 지적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지난 정권에서 국가 부채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위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할듯 싶다. 이건 무슨..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서 집에 금괴를 쌓아두면, 자기가 부자인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것과 같은 이치인데,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그자들이 하는 말은 대출이고 뭐고 상관없이 집에 금괴가 많으니 부자 아니냐 라는 것이다. 참 한심하다.

한참 환율이 오를때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북한에 줬던 헛돈이라도 쓰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것 같다라 했더니, 당장 하는말이.. ‘북한에 달러를 줬지 원화를 줬냐, 도대체 무슨 엉뚱한 소리 하냐’라고 하는데.. -_-;; 참 기가 막히지 않을수가 없었다. 북한에게 달러를 주려면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원화를 팔아서 달러를 매입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않는 단순 무식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던 기억이 있다. 이런 단순 무식한 사람들을 속이는것은 꽤나 쉽다. 자신이 잘못한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자신이 잘한것은 계속해서 들려주며 과장시켜면 되는것이다. 그러면 단순무식한 사람들은 잘된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고 나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 웃기는 행동만 골라서 해왔다. 실제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는것은 둘째 치고라도, 국가 기록물을 무단으로 반출하는 엄청난짓을 하고도 아직까지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아예 기록물을 가져간적이 없다 했다. 기록물을 가져간 흔적이 발견되자 무단으로 가져간것이 아니라 허락받고 가져간것이라며 딱 잡아뗐었다. 물론 둘다 거짓말의 연속이다. 추가 조사에서 무단 반출했던것이 드러나자, 여태껏 자신들이 했던 거짓말과 국가기록 무단 반출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보다는 ‘그러면 내가 서울까지 가서 국가기록물을 봐야 하느냐’라며 우겨대기 시작했다. 물론 법과 상반되는 발언이라는것은 스스로 더 잘 알았을것이다. 버티다 버티다 안되니 자기 마음대로 대충 자료를 챙겨 반납해 버렸다. 이거나 받고 조용히 있으라는 식으로. 물론 반납 방법에서 부터 반납인지 복사후 원본제출인지까지 투명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고 아직까지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다른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듯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도 않고 있다.

친형역시 처음에는 비리를 저지른적이 없다고 딱 잡아 떼다가, 조사결과가 드러나자 자신의 비리를 인정하기 시작한것 역시 그 전략에 있어서 국가기록물 무단반출건에 대한 변명방법과 똑같다. 친형의 비리와 관련해서 대국민 사과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친형이 아직 비리를 인정하지도 않고 있는데 자신이 무어라 할수 없다는 핑계를 들었지만, 정작 친형이 비리를 일부나마 인정한 지금에도 아무말 않고 숨어있는것을 보면 참으로 비겁하기 짝이없는 자신의 본색을 드디어 드러내는구나 싶다.

사람들이 명박산성이라 부르는것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컨테이너 벽이다. 한미 FTA 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농민 시위대를 차단하려고 컨테이너 벽을 쌓았던 일이 있는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죽창을 들었던 농민 시위대가 크게 이슈화 되기는 했지만,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각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한미 FTA 협상 결과 역시 국회의원, 즉 국민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는 컴퓨터를 통해서 짧은 제한시간 내에 잠시 열람하도록 하는 웃긴 행동을 하기도 했던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것 같다. 이것을 보고 투명하다 할수 있을까? 그때는 왜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면서 사람들이 생 난리를 피우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왜 이런 불합리를 보지 못했고, 또 아직까지 지각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앞서 몇가지 말했듯이 노무현의 불투명함과 억지 부리기는 재임 초기부터도 알수 있었던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북한 동포’라는 말로 북한도 한민족이라며 도와야 한다 해놓고는 UN 북한 인권 결의안에서는 기권해버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데도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를 지지했었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누누히 말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에 문제가 있거나 경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여러모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30, 2008 at 11:1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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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 프로그래밍.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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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에도 방학때가 되어서 그런지, 코코아 프로그래밍에 관한 검색어를 따라 들어오는 클릭수가 늘어났다. 지금은 엉뚱한 내용의 포스트로 채워나가고 있지만,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했을때만 해도 원래 구상했던 목적에 맞게 코코아 프로그래밍에 관한 포스트를 여러개 올렸었는데, 그것들이 아직까지 사람들이 클릭하는 포스트가 되고 있다는것이 약간은 신기하다.

코코아 프로그래밍에 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한글로는 거의 찾아볼수 없고, 영문으로 쓰여진 책도 역시 몇권 없는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료가 없는 이유는 애플에서 이미 충분한 양의 자료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어서인것 같다. 물론, ADC에서 배포하는 자료는 모두 영문이고, 때때로 일어 번역본은 있지만 애플에서 배포하는 한글 번역본은 아직 본 기억이 없다.

어제는 코코아 프로그래밍 이라는 검색어를 찾아들어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구글에서 코코아 프로그래밍을 대상으로 검색을 해봤다. 여러가지 한글 웹사이트가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이거다’ 라든가 깊이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블로그나 웹사이트는 없었다. 영문으로 된 해외 웹사이트들은 몇가지 있기는 하지만 뭐.. 한글로된 게시판이나 블로그 포스트들의 분위기를 대충 보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프로그래머 또는 개발자라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정신을 못차리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고 후에 요긴하게 써먹기 위해서 틈틈히 공부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프로그래머나 개발자로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도대체 이사람이 개발자가 맞기나 한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니 말이다.

비주얼 스튜디오만 써왔다면서 이클립스를 이용한 개발환경도 구축하지 못하겠다며 도움을 달라는 게시물, IDE와 컴파일러의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 그리고 어제 발견한 .Net과 코코아, 비주얼 스튜디오와 Xcode의 대응개념조차 없어서 엉터리 포스트를 써놓는 소위 ‘개발자로서 밥벅고 사는 사람’들. 도무지 내가 버릇이 없어서 이런생각이 드는것인가 스스로 물어봐야 할 정도로 깜깜한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꽤 많은것 같다. 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블로그와 게시물을 보면서 느낀 바로는 일반적으로 웹개발자라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더 깜깜한것 같은 느낌이다.

하물며 ADC 문서들, 그것도 영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읽고 배울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국내에는 많이 없는것 같다. ADC문서는 여러가지 책과는 다르게 딱히 정해진 순서가 없고, 난이도가 일정하지 않아서 앞뒤 내용을 스스로 짜 맞추면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힐리가스가 쓴 책의 번역본을 ‘성서’같이 믿고 덤비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것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저 책을 읽고 과연 무엇을 만들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국내 ‘개발자’들이 원하고 이해할수 있는 책은 ‘무엇무엇 따라하기’ 또는 ‘코딩예제(cookbook)’와 같은 종류의 책인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남이 해 놓은것을 보고 어떻게 부분부분을 가져와서 짜깁기 할것인가만 생각하면 되는, 그런 작업에만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개발자일까.. 아니면 ‘짜깁기인’들일까?

Written by dglee2

December 24, 2008 at 8:18 pm

위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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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꾸리고 관리하는것을 블로깅이라 한다면, 위키 웹사이트를 꾸리고 관리하는것은 위키-잉이라 불러야 되는것이 아닐까? 며칠전 부터 위키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이게 참 의외로 유용하고 재미있다. 새로 발견한것이라 그런지 블로깅보다 의미도 있는것 같다.

블로깅은 말 그대로 로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나는 새로운 소식과 내용을 계속해서 적고 기록하는 작업에 적합한것 같다. 그런데 내가 블로그에 기록하는것은 시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다. 특정한 시간에 일어난 일이나 생각을 순차적으로 기록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일반적인 생각을 적어내고 있으니 블로그의 성격과는 약간 맞지 않는것 같기도 하다.

반면 위키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처럼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책을 쓰는 기분으로 생각과 내용을 정리해 둘수 있는 이점이 있는것 같다. 책을 쓴다는것. 내가 오래 전부터 해오고 싶어왔던 일이고 또 앞으로 잘 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위키-잉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것 같다. 덕분에 블로깅에 당분간 좀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21, 2008 at 6: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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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일에도 절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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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억을 모교에 기증했다가 140억에 달하는 증여세를 부과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210억을 기증한 사람과 장학 재단은 부당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고, 심심찮게 공무원을 공공의 적으로 내몰기 좋아하는 많은 네티즌 역시 담당 세무서와 국세청을 비난하고 있다.

증여세가 부과되는 부분은 현금기부액 10억을 제외한 주식으로 증여된 200억에 관한 부분이라 한다. 한마디로 기부할 당시 기부자가 200억에 상당하는 주식을 팔아서 현금으로 기부를 했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것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 학교와 기부자는 현금대신 주식을 주고 받았기에 이렇게 증여세가 붙은 셈이다.

왜그랬을까? 10억은 현금으로 주었으면서 왜 200억은 주식으로 기부했을까? 단순히 증여세가 부과될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 속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왜 주식으로 기부를 하면 증여세가 붙도록 세법을 만들어놓았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당시 기부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기부와 관련된 세법과 규칙을 조금이라도 따져 봤다면 이정도 내용은 충분히 알수 있었던 사항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지성인의 집합소라 불리우는 대학. 대학이 기부를 받으면서 법적인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것은 그 대학교의 학장과 교수진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생각된다. 아주대에는 법학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법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기부를 받으면서 세법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는것은 명백한 대학교측의 실수이며 140억의 증여세는 충분히 예방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국세청이 140억을 추징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장학재단이 무너지고, 기부자의 선한 뜻이 빛을 잃을수도 있다는것은 안타깝지만, 충분히 절차를 알아보지도 않고 돈부터 쥐어줘 버린 기부자와 무작정 돈만 받아챙겨버린 대학교측의 실수에 대한 벌금으로라도 140억은 추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주대낮에 버젓이 법을 어겨놓고도 ‘나는 그런 법이 있는줄 몰랐다’ 또는 ‘법이 잘못된것’이라 투정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식의 투정이 모두다 받아들여 진다면 세상에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매번 분쟁이 붙을때 마다 꼭 헌법소원까지 가고야 마는 한심한 사람들은 여태껏 충분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있다. 악법이라도 법은 지켜져야 하고, 법이 악법이라 생각되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악법을 고쳐나가는것이 이치에 맞다. 악법이라 생각된다고해서 지금 당장 법을 어겨도 괜찮다는 것은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 세법을 무시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것이 맞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사회질서를 혼란하게 만드는 일원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번 140억 증여세는 정상적으로 납부되어야 하는것이 옳다. 주식형태의 기부에 대한 증여세 부과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에 대한 세법은 추후에 고쳐나가야 하고, 법이 고쳐진 이후에는 고쳐진 법대로 행정을 꾸리는것이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주의깊게 법과 절차를 따랐다면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일이었던 만큼,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그들의 실수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기분과 여론에 따라 법이 잘못되서 그런것이라며 투정부리고, 어떤때에는 법을 적용하고 또 어떤때에는 법을 적용하지 마라 하는것은 무법천지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기부라는 선행을 하려 했다고는 하지만, 법을 상징하는 법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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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오늘 조선일보 강인선기자가 쓴 기사의 일부분이다.

2002년 7월 황씨는 아주대에 전 재산 기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황씨와 오랜 친구인 아주대 교수들이 “저 사람은 학교에 재산을 다 기부하고 나면 길바닥에서 쓰러질 사람이니 일부는 돌려주자”고 했다.

그렇지만, 강인선 기자가 인용하고 있는 12월 10일자 조선일보에 게제된 연합뉴스기사에서는,

황씨는 당초 주식을 모두 기부하려 했으나 아주대 측에서 대학이 기업체를 운영하는 것에 난색을 표해 10%의 주식을 돌려받고 기업 운영을 계속해 이익을 냈다.

라고 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것이 맞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맥 OS X에서 계정을 만들수 없기도 하고, 계정을 만들기도 싫고 귀찮기도 해서 강인선 기자에게 도대체 어느것이 맞느냐는 장난성?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강인선 기자가 쓴 기사내용이 기부자 황씨를 미화시키고 있다는 것,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부자 황씨를 미화시키고 있다는것 하나만큼은 분명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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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9, 2008 at 10: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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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실수하고 있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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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FTA 비준안 상정이 옳다 그르다, 또는 어느당이 주장하는것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실수하고 있는것은, 의도나 결과를 논하기에 앞서 과정이 잘못되었다는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보같은 일부 국민들만 모르고 있을뿐,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민들을 대표한다는 민주당. 서민들이나 민주당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부자들을 상당히 혐오한다. 아무리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에 앞장서서 기부를 한다 하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기업인은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부를 축적하려는 의도나 결과에는 큰 문제가 없어도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어김없이 손가락질 해온 사람들이 바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서민들과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지금 ‘민주주의’를 수호 하겠다며 망치를 휘둘러 국민의 재산을 훼손하고 전기톱을 동원해 여러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는 좋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그들은 지금 폭력주의를 몸소 실쳔해 보이고 있으니, 지금 민주당은 자신들이 추구한다는 목표를 이루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겠다 라는 목적을 가지면 조폭이 되어 남의 돈을 빼앗고,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목적이 순수하다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역시 순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민주당은 자신들의 순수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하고 있으니, 평소 자신들이 그렇게도 혐오하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이는 부자들과 하나도 다를것이 없어 보인다. 자기가 스스로 손가락질 해대면서도 뻔뻔한 그 행태가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을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최근 부장검사를 무차별 폭행했던 어리석은 어떤 사람과 다를것도 없는것 같다. 어리석은 짓을 한 그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일관된 진술을 하지도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처벌받기만을 원하고 주장했었던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극단적인 폭력을 서슴치 않고 휘둘렀던 그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금 자신들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폭력을 행사하는 민주당과 그 주변 인물들이나 내 눈에는 하나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주장하는것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해야 한다. 설령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에 승복할줄 알아야 하는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폭력을 휘두르는것을 민주주의라 부르는 곳은 지구상에는 없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방법이 악하면 악행이 되는것이 당연한 이치이며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다수의 결정에 승복할줄도 알아야 하는것이 민주주의라는것을 망각한것이 바로 민주당의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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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9, 2008 at 1:20 am

영화 크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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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실망스러운 영화다. 기대를 많이 했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감상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것이 상당히 아쉬운 영화였다. 북한인권 문제와 탈북 현상은 아주 강력한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바람에 크로싱은 좋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라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소재만을 놓고 봤을때에는 Blood Diamond 만큼 인상적인 소재라고 생각했고 또 그만큼 기대를 했었지만, 크로싱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Blood Diamond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데에는 실패한것 같다. 나는 영화 초반 북한에서의 생활을 보여줄때 정확히 몇년도의 상황을 조명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서방세계와 남한생활, 그리고 똑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북한의 생활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면 폐쇄적이고 낙후된 북한의 생활환경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었을것 같은 아쉬움이 남지만,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북한의 생활은 넉넉하지는 않아도 행복하기만 한 생활. 그것 뿐이었다.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미화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중국의 정책 덕분에 너무나도 힘든 탈북 과정도 역시 그 어려움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것 같다. 솔직히 100분 길이의 크로싱 보다 23분 길이의 유튜브 동영상이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더 감동적이라 할수 있을것 같다. 영화이면서도 1/4길이의 짧은 다큐멘터리 동영상보다 감동이 적었던 영화가 바로 크로싱이었다. 내가 비교하고 있는 영화인 Blood Diamond는 DVD 두장에 걸친 긴 상영시간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짧은 유튜브 동영상의 경우만을 봐도 상영시간이 짧다고 해서 사실적인 내용과 감동을 다 전달할수 없는것은 아니다. 괜히 사막에서 헤메는 감상적인 장면들을 축소하는 한편 조금더 많은 사실을 전달하고, 탈북자들이 겪는 여러가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깊이있게 조명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치적인 부분 역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브리핑이 열리는듯한 장면은 한장면만 잠시 있었을뿐 북한 외부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또 어떻게 돕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수 없었다. 솔직히 노무현 전 대통령시절 UN 북한 인권 결의안 투표에서 우리나라가 기권표를 던졌을때에 난 우리나라 정부가 미친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올바르게 시대를 조명하고자 했던 영화라면 그 모든것을 다루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본에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던 100분 길이의 영화에서는 그러한 내용들이 모조리 빠져 있었다.

북한에 있는 아들과 아내를 찾기위해 브로커를 찾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괴로움과 어려움, 그리고 비용. 브로커가 대충이나마 어떠한 경로로, 어떠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역시 조명되지 않았다. 그냥 브로커를 찾아내고, 브로커는 그냥 아내와 아들을 찾아내는 이야기 전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었다.

아무튼 감독이 누구였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 강력하고 좋은 소재를 허무하게 낭비해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예고편에서 약속했던 내용과 감동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별 다섯개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별 두개도 감사히 받아야 할 영화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17, 2008 at 6:2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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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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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기독교는 모순 덩어리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한마디 한마디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정말 맞는 말들이지만, 정작 그것들을 엮어 생각했을때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교회에서 매주 성경의 한구절 만을 들어 설교 하는 이유도 여러가지 구절을 엮어 놓으면 앞뒤 말이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영화 ‘밀양’에서는 내가 말하는 모순이 비교적 잘 그려져 있는것 같았다. 용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기 위해 죄를 지은 죄인은 용서 받기를 원했고, 피해자는 죄인을 용서하기를 원했다. 영화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는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된다’는 말을 했을테고, 피해자에게는 ‘하나님과 같이 용서 하는것이 옳다’고 말했을것이다. 물론 따로 떼어놓고 보면 상당히 요긴하고 맞는 말이다. 죄인이나 피해자나 따로 떼어놓고 보면 둘다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수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둘을 묶어 놓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영화의 주인공이 말하듯 ‘하나님이 용서했는데 피해자인 자신이 어떻게 더 용서를 하느냐’라는 말에 영화속의 목사나 다른 기독교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도 주제를 돌리는 엉뚱한 위로의 말대신 이런 모순을 명쾌히 풀어내 설명할수 있는 기독교인이 있을까 싶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문구다. 스스로 묵묵히 노력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감지하고 알아서 도와준다는 이 말은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조언이다. 그런데, 교회에 가 보면 통성기도라고 하던가. 아무튼 크게 소리내서 하나님을 부르라고 하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된다 하기도 한다. 떡하나 더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떡을 주게 되어 있다며 간절하게 하나님을 불러야만 하나님이 내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고 한다. 둘중 어느것이 맞는 말일까? 한쪽에서는 묵묵히 자기 일을 알아서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도와준다고 하고, 또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을 애타게 부르고 도움을 청해야 내 목소리를 듣고 도움을 준다고 하니 도대체 어느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전지 전능하다는 하나님이 내가 간절하고 애타게 부르고 찾지 않으면 나를 제대로 감지할수 없다는것 또한 이상해 보이기도 하고, 쓰러져 있던 사마리안이 애타게 도움을 청했기에 도움을 받았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며 기도한다. 한마디로 힘든 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정작 자신이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오히려 반긴다. 하나님이 자신을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 단련 시키는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고 방식은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큰 힘이 되지만 역시 시험에 들지 말기를 기도하는 것과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원하듯이 하나님이 자신을 요긴하게 써주기를 바란다면 삶의 매 순간순간을 시험에 들게 해서 자신을 단련시켜주기를 원해야 하는것이 옳지 않을까? 딱히 어렵거나 힘든일이 없을때에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며 기도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때에는 자신을 요긴하게 쓰기위해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라며 위로하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땜빵질이다. 사람과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급조한듯한 땜빵질의 연속이다.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된다 라고 위로하고, 피해자에게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듯 당신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해주는 땜빵질. 물론 땜빵질이기에 그때그때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것 같지만, 둘은 서로 앞뒤가 잘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다.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고 하고, 교회에 미친듯이 매달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리내어 간절히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해주면 되는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진리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그들도 잘 알고 있듯이 진리는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성경이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시간이나 상황이 바뀌면 아주 쉽게 말을 바꾼다. 그때그때 적절한 성경의 페이지를 펼쳐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먼저 말했던것과 뒤에 말하는것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목사나 신부는 상황에 따라 성경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들어야 할지 공부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경은 진리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과 그때그때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수 있는 적절한 땜빵질 문구를 담고 있는 책이라 하는것이 옳을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해할수 없는 몇가지를 명쾌히 설명해줄수 있는 기독교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17, 2008 at 11:08 am

높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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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부모 자식간에 반말 하는것이 이렇게 일반화 되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당연히 부모님에게 말을 높이지만, 때때로 친구들은 그런 내 말투를 듣고 부모님과 하는 전화 통화가 너무 딱딱한것 아니냐고 물어본다. 부모님에게 반말을 하지않으면 대화가 딱딱하고, 그만큼 부모님과의 거리도 멀어지는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쓰는것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요즘에는 이 존댓말이라는것이 내가 어렸을때와는 상당히 다르게 쓰이고 있는것 같다. 이제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친밀감의 척도로써 존댓말과 반말이 쓰여지고 있다고 할까. 아무튼, 존댓말이라는것에서 존중의 의미가 상당히 많이 사라져 버린것 같은 느낌이다. 해서, 부모님과는 친밀한 관계이니까 반말을 쓴다? 뭐, 반말을 쓰면서도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는것이 불가능하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그렇다면 그와 똑같이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해서 부모님과 친밀감 없이 생활한다고 말할수도 없을것 같다.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서 자녀에게 반말을 허용하는 부모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이 자기 부모들에게 반말 하는것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과 온/오프 라인을 통해 버릇없고 무서운 ‘초딩’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가 거의 일치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내 머릿속에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것은 사회 학자가 연구를 이미 했거나 해볼만한 것이라 내가 무엇이라 단정짓지는 못하겠지만, 둘의 관계가 전혀 상관없을것 같지는 않다.

요즘엔 높임말의 사용이 이상하게 변질된 경우도 있어서, 유치원 다니는 아이는 부모에게 반말을 하고, 부모는 아이에게 꼬박꼬박 높임말을 해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는데, 난 그런것을 볼때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모와 상당히 친근?해 보이는 귀여운 아이, 그리고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훌륭한 부모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내눈엔 한심한 부모와 그런 부모를 둔 불쌍한 아이가 보이는데, 내 눈이 잘못된 것일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열등감에서 빚어지는 반항심?과 비슷한 노이로제 반응이랄까. 아무튼 그런 비슷한 감정때문에 청개구리처럼 해야 될것 마저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것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말을 낮추고, 자식은 부모에게 말을 높이는것에 노이로제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진것 같은데, 딱히 나쁜것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옛것에 대한 반항심, 물론 자신들은 그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것이라 둘러대겠지만, 멍청한 반항심에서 의도적으로 거꾸로 돌아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진것 같다.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는 부모님이 자신의 윗사람이 되는것은 당연하고, 윗사람에게 높임말을 쓰는것은 오랫동안 우리가 지켜왔던 한국인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부모님을 윗사람으로 생각하고 높임말을 쓴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 때로는 친구 같기도 하고 때로는 어른같기도 한 그런 부모님을 가질수 없다고 생각하는것은 큰 잘못이다. 물론 옛것은 옛것이고 새로운 가치관과 풍습?은 생겨나게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특성을 잃어버리는 최근의 변화는 후에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정체성의 상실만을 가져올뿐 좋은 결과는 찾아보기 힘들것이 분명하다.

Written by dglee2

December 17, 2008 at 1:2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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