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08
종교.
흔히들 말하는 ghost in the box. 난 이것을 믿지 않는다.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보니 Alan Turing도 그러했다 한다. 아무튼, 내가 믿는것은 인간의 모든 생각은 어떠한 물질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인만큼 종교라는것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일은 없는것 같다. Albert Einstein 역시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면서 ‘신이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리 없다’며 자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그의 편지글에 따르면 그역시 종교는 비논리적인 허구라 생각했다는것을 알수 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직업상? 종교에 심취할수 없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종교에 심취하지 않은 과학자들은 상당히 많다. 종교 역시 지동설에서 부터 시험관 아기, 진화론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에 이르기까지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과학을 그리 반기지 않아온것도 사실이다.
단군이야기나 알에서 태어났다는 주몽이야기는 단순한 ‘설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고 피를 뻥튀기 시켜 와인을 만들었다는 예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일화는 모두 사실이라 믿는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그야말로 ‘비논리적인 사고’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종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일성이가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만들었다는 ‘비논리적인 사고’를 가르쳐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이라 믿도록 만드는 공산당과는 다르게 종교단체들은 소위 사람을 ‘착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타 종교가 나쁘다며 헐뜯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종교인 이라기보다는 선동꾼 또는 장삿꾼 정도 밖에 안되니 논외로 하는게 옳을것 같다.
동서양의 수많은 종교들의 교리를 한마디로 압축시키면 ‘착하게 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라는 부수적이고 구체적인 말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양심껏 착하게 살라는 것만은 거의 모든 종교의 기본 교리인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여러 종교인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나 종교활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을 잊어먹는것 같아 보인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들여 돈벌이에 급급한 모습, 자신들은 타인들과 다르며 인간적으로 훨씬 나은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어떠한 우월감을 생성하고 또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을 볼때면 이기적인 인간의 한계를 보는것 같아 씁쓸하다. ‘비논리 적인 사고’를 강요한다는 것 외에 내가 종교에 심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씁쓸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때때로 자신의 종교는 과학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과학보다는… 이기적일수 밖에 없는 동물의 한계를 뛰어넘을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이다 라고 말할수 있었으면 좋을것 같다.
일방통행.
통화 스와프 라는것에 힘입어 원화 가치와 국내 주가가 동시에 상승했다. 신문에서 설명하는 것 외에는 통화 스와프라는것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그것으로 인해 해외에서 쏟아져 나오던 한국 국가부도 위기설도 잠잠해졌다 하니 상당히 효과가 있는 성과인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것은 이것을 놓고 잘했다 혹은 수고했다 말하는 사람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 주가가 폭락하고 전세계적인 경제 불안 속에 국내 주가도 어쩔수 없이 덩달아 같이 폭락할때에는 대통령과 강장관을 욕하던 사람들이, 대통령과 강장관이 어떻게든 힘써 이뤄낸 성과를 보면서는 아무말이 없거나.. 도리어 다른 트집을 잡아 계속해서 욕하는것 같아 보인다 생각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만이 아닐것 같다. 상황이 나빴을때 그들이 보여준 ‘순발력’을 생각해 볼때, 대통령과 강장관을 욕하고 비꼬아 대던 그들이 좀더 추이를 두고 본후 칭찬을 해줘야 겠다 생각하는 소위 ‘진득한’ 또는 ‘무거운’ 입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것이라 생각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일방통행이 참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웬지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사람의 모든 생각은 뇌에서 근원하고 Hebbian 학습효과를 생각해 볼때, 한번 생성된 synaptic 연결고리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해는 하지만 일방통행 하는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방통행 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기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일방통행 하는 방법만을 학습했고, 또 그런 방법으로 계속해서 스스로 학습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지만 그들이 받은 교육이 잘못되었든 성격이 잘못되었든 그들의 일방통행은 정말 잘못된것 같다.
여자.
나는 여자가 담배 피우거나 술마시는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뭐.. 적당한 양의 알콜은 괜찮다 생각하지만 음주가무가 인생의 낙인양 노골적으로 그것을 즐기는 여자는 무척이나 싫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이다’라는 좋은말 부터 ‘고리타분하다’ 또는 ‘시대에 뒤쳐졌다.’ 아니면 ‘남성 우월주의 싸이코다’라는 인신공격성 말까지 어김없이 내밷아 주겠지만, 싫은것을 어찌할까. -_-;; 정말 싫다.
그렇지만 나는 흡연과 음주가무가 남성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다 흡연과 음주가무를 할수는 있지만.. 여자는 남자와 다르기 때문에 여자는 흡연과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여성주의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없다.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라고 하지만 분명히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있다.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흠연과 음주와 상관하는 차이점은 여자는 남자와는 달리 ‘임신’이라는것을 한다는 점이다.
애는 혼자 만드나 -_-;; 라 하기도 하지만, 열달동안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남자가 아닌 여자다. 아이에게 유전자를 주는것 외에 여자는 남자와는 달리 아이에게 더 큰 영향을 줄수 밖에 없는 이 ‘임신’이라는것을 하기때문에 나는 여자들이 흡연이나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다. 임신 기간중에만 ‘조신’하게 지내면 된다는 사람은 참.. 뭐랄까.. 자신의 2세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흠연은 물론 과도한 음주는 ‘몸을 상하게’하고, 상한 몸이 제대로 회복되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임신 기간중에만 어떻게 잘 하면 되지 않을까, 혹은 그렇게만 하면 문제없다 라고 생각하는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것 같다.
나는 2세를 가지지 않을 여자라면 마음껏 흡연하고 음주가무를 즐겨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마음껏 흡연하고 음주를 즐기는 여자들은 2세를 가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느끼는것이지만 여자는 ‘임신’이라는것을 하는만큼 그들 자체가 남자보다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어떠한 열등의식이랄까 한이랄까 아무튼 그런것 덕분에 남자들에게 지지 않겠다, 남자들과 똑같이 하겠다라며 자신의 가치를 망각하는 여자들이 많은것 같다. 흡연과 음주를 즐기는 여자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말은… 한숨쉬듯 담배연기 훅훅 불어내는 여자, 술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자, 술마시고 토하는 여자, 지난밤 필름끊겼다 말하는 여자는… 하나도 이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세상에는 여러가지 들어서 유쾌하지 않은 말들은 많이 있지만, 내가 무서워 하는 말, 그래서 평생 듣고 싶지 않은 한마디는 ‘Your best wasn’t good enough.’ 이것이다. 유명한 노래의 노랫말이기도 하고 누구나 알만한 영화의 대사로 등장하기도 했던 이 한마디가 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다.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생각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에게 저보다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자신의 한계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한계점에 도달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함을 깨닫는 그 비참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매번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지 않는것인지도.. 아니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것의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것이 다행스럽다 해야할까. 아무튼, 매번 최선을 다하지 않은것 같은 나를 볼때면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도 부족함을 느끼는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드니.. 좀 문제가 있기는 있는것 같다.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나는 절대 ’Your best wasn’t good enough.’이라 말하지 않아야겠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말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가격택.
가격택. 수년전 어느 할인 마트에서 보았던 문구다. 그냥 보았다면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를뻔한 이 문구는 매장내 모자를 파는 곳 진열대 위에 적혀있었던 ‘가격은 가격택에 표시되어 있습니다.’와 비슷한 글에서 발견한것이다. 이 문구를 본 첫느낌은.. 웃기기도 하고.. 좀 불쾌하기도 한.. 상당히 짬뽕스런 기분이었다.
‘가격표’ 라고 적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궁금하다. ‘택’과 ‘표’ 둘다 한 글자다. 그러니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 그런것은 아닐테고.. 활자로 인쇄했을때 보이기 쉬우라고 한것같지도 않다. 오히려 ‘표’가 잉크를 덜 소비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공간이 있어 눈으로 보기에도 편한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택’은 영어, ‘표’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을수 있는 한글이다. 왜 ‘표’를 놔두고 ‘택’을 썼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선거관리위원회이던가 무엇이던가.. 아무튼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메니페스토 선거’를 치르자는 공익광고를 대대적으로 한적이 있었다. 메니페스토. 할인마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약 선거’라는 말 대신 ‘메니페스토 선거’라는 말을 애써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당시 일부 정치인들의 노인 비하 발언으로 뒤숭숭하던 때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어르신들이 도저히 알기 힘들것 같은 이 ‘메니페스토’라는 말을 사용해서 전국적으로 광고했어야 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 쉽게 물어볼수도 없는 그 심정을 생각해볼때 그 ‘메니페스토’광고는 정말 실패작이라 해야 할것 같다.
의도적인것인지 무의식적으로 그러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필요이상의 영문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중 하나는 지난번 피디 수첩이 문제시 되었을때 피디 수첩 제작진중 한 명이 인터뷰 했던 내용중 일부다. ‘.. 명백한 팩트 입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을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을까 싶다. ‘팩트’라는 말 대신 ‘사실’이라는 단어를 쓰면 자신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생각한것일까?
괜히 유식해 보이려는 잠재의식에서.. 또는 괜히 있어보이려 하려는 허영심?에서.. 아니면 정말 정말 영어에 파묻혀 살아온 탓에 영어단어 외에 한글로는 도저히 표현할수 없는 상황이라서 하는수 없이 영어를 쓰는것 어느것 하나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일반 대중을 상대 할때에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전국에 영어 열풍이 불고 누구나 어느정도의 영어는 다 하는 세상이라 하지만, 평생 열심히 일만 해야했던 어르신들…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해야 했던 어르신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하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인 한글을 물려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 최근들어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어느새 영문을 여기저기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 남기는 글이다.
어쩔수 없는것인가..
꾸준히 조회수가 올라가는… ‘암적인 존재’ 포스트. 조회수가 이렇게도 지속적인 이유는.. 웃기게도 지속적으로 특정 웹사이트 주소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이다. 글을 쓸때 특정 웹사이트 이름을 같이 썼더니 그게 계속해서 검색되고 또 사람들이 클릭하는 웃지못할 현상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뭐.. 물론 그렇고 그런 컨텐츠를 찾는다는것은 어찌보면 동물일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지만, 참 느낌한번 묘하다. 사람들이 특정 단어에 얼마나 신경쓰는지 알고 싶다면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포스트를 올려놓고 통계를 보는것도 괜찮은 방법일듯 싶다. 아무튼 신고했던 특정 블로그 외에도 한두개 정도 웃긴 블로그가 있는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혼자 방방 뛰어봤자 별 효과없으니 때를 기다리는게 좋겠다 싶다.
그런데.. 불법인지 편법인지 아무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장사하는 저런 웹사이트를 상대로 DoS 공격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것일까? 상당히 궁금하다. -_-;;
잠.
사람이 잠을 자는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난 웬지 모르게 이것에 대해 생각할때마다 상당히 무식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잠이라는것을 연구하는 이유가 단순히 ‘모른다’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잠이라는것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잠이란것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역시 아는사람이 없지만.. (그걸 알았으면 왜 잠을 자는지도 이미 알았을터…-_-;; ) 아무튼 잠이라는것을 없앴을때에 인간이 겪는 고통을 볼때 누구나 잠이 중요하다는것쯤은 알수 있다.
잠과 공부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기도 하는데… 뇌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다들 ‘자라’고 대답할것이다. 잠을 자지 않으면 공부한 내용이 제대로 기억되지 않기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분량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잠을 자지 않으면… 테이블 위의 먼지가 날아가듯 휙 하니 날아가버리기 쉽다. 반면 적당한 분량의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잠을 자게 되면 잠을 자는동안 그것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해야할까… 아무튼 기억이 되게 된다.
이런것을 알기 전에도 난 잠안자고 밤새도록 공부한다는 그 ‘밤샘공부’라는것을 해본적이 없는… 공부는 좀 덜했다손 치더라도 배째라하고 잠은 꼬박꼬박 자는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가끔.. 아주 가끔 공부할것이 산더미같이 많을때면 밤늦게까지 있는 경우가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경우다. 상당히 고민스러운 경우다. 적어도 매일 6-8시간 정도는 자는 내가… 2-3시간만 자고 제때 깨어날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자야 하나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기때문이다. 잠을 안잤을경우 아침이 되서 활동해야 할때쯤이면 와르르 ‘무너질것’은 뻔하지만.. 괜히 늦잠 잘까봐 무서워서 잠을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당히 고민스럽다.
흠..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잠은 잘것같긴 한데… 이제는 고민스럽다기 보다는 상당히 불만스럽다. 잠안자고 살수는 없을까? 잠안자고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 잠자는것도 상당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_-;
삐라.
탈북자 모임에서 살포하는 대북 삐라가 문제시되고 있다. 최근 남북회담에서 북한이 트집잡기 시작한 이 대북 삐라가 희안한 정치적인 이유로 금지당할지도 모르겠다. 통일부니 국방부니 국가 기관은 머리나 긁적이고 있는데다 이제는 개성공단 경제인들 마저 나서서 대북 삐라를 중단 시켜야 한다고 하고 있다.
대북 삐라가 중단되어야 할까? 북한은 더이상 대남 삐라를 뿌리지 않는데, 우리가 대북 삐라를 살포하는것이 일종의 ‘반칙행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전혀 아니다. 대북 삐라 살포는 중단될수도 없고 중단되어서도 안된다.
우선 북한은 대남삐라를 뿌리지 않는다는것이 맞는 말인지 부터 생각해보자. 탈북자 모임에서 대북 삐라를 풍선에 매달아 보낼수 밖에 없는것은 디지털 기기가 지배하는 21세기에도 낙후된 북한 주민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한 유일한 방법은 흔히 말하는 삐라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이 남한 주민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대랑살포 할수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인터넷이 정답이다. 북한은 더이상 hard-copy 삐라를 뿌릴 이유가 없어진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디지털 삐라를 뿌릴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서는 종이로 살포하는 삐라보다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삐라가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삐라이면서 삐라가 아닌척 위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들을 인정하고 그러한 단체들에게도 활동 지원금을 보조하고 있다. 그러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탈북자 단체가 하는 행동을 강제적으로 금지할 권리가 있을까? 대북 관계가 악화되는 만큼 국익을 위해 막을수도 있다 한다면 사사건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들 역시 원활한 국가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만큼 없애버릴수도 있는것일까?
대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으면 대북 삐라를 중단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전형적인 공산당의 이중잣대의 산물이다. 자신들은 대남 삐라를 살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다른 통로를 통해 분명히 삐라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무단 살포하고 있는것이 사실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남한의 시민단체들의 자유스러운 행동은 보장하라는 한편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의 행동은 제지하라는 이러한 엉뚱한 요구는 절대 들어주어서는 안된다.
박왕자씨 살해 사건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당시 남한의 요구를 북한은 얼마나 들어주었는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한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들이 왜 우리에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일부나마 포기하면서까지 자신들과 타협해야 한다며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매번 이러한 넌센스에 말려드는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들이다.
남북관계가 좀 악화되면 어떠한가? 남북관계 악화라는것이 무서워 그들의 억지요구를 다 들어줄것인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문구가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업적이며 중요한 사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식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문구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애완동물.
내가 사는곳 주변에는 애완동물. 특히 갖은 종류와 사이즈의 멍멍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그들이 애완동물을 데리고 산책나오는 주된 목적이 집 밖에서 응가를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것을 알고는 있지만 가끔씩 그들을 보다 보면 주객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개가 움직이면 같이 따라 움직이고 개가 서면 같이 따라 선다. 이것은 도무지 개가 사람을 이끌고 다니는것인지 사람이 개를 이끌고 다니는것인지 헷갈릴정도다. 개가 응가를 할때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도 많다. 응가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가거나.. 응가를 치우거나 하기 위해서 언제 응가가 끝나는지 보는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개가 응가하는 그장면을 주시하고 있는 그 사람을 볼때마다 개가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은 무엇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스러운것은 개가 응가하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그 사람은 다른 사람, 예를들어 자신의 부모나 아들딸과 같은 가족이 응가하는 장면을 그렇게도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혐오감 없이 쳐다보고 있을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때로는 사람보다 개가 더 상전 취급 받는것 같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키운다는것에 대한 알지못할 자부심이랄까 아무튼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자기가 훨씬 나은 사람이라는 어떠한 우월감을 가지는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미국인에게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몇몇 한국사람들에게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었던 심리다. 애완동물을 키우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다른 개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고는 하지만, 그런 알지못할 우월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애완동물을 돌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하고 다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애완동물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동물이 아프거나 혼자서는 살아갈수 없는 경우에 인간이 돌봐주는것은 적극 찬성이나 멀쩡한 동물을 잡아다 ‘애완’동물로서 집안에다 가둬두거나 목에 줄을 매달아 끌고 다닌다거나… 정작 동물은 싫다하는데도 사람욕심에 신발 신기고 옷을 끼어 입힌다거나 하는 것은 돌보는것이 아닌 ‘학대’하는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러한것들을 ‘학대’라 하긴 했지만 인간을 위한 치료목적일 경우에는 합리화 될수 있는 ‘학대’라 생각한다. 몇몇 사람들은 화가나 나에게 돌을 던지려 할지도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내가 가진 ‘애완동물관’이다.
개나 고양이 그리고 기타 다른 동물들은 원래 자연 속에서 자유스럽게 뛰어다니며 생활 해야하는 개체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자유를 침해하면서 스스로 동물 애호가라 부를수 있을까? 가만히 자고 있는 애완동물을 인간이 심심하다며 괜히 깨워 장난치고 웃어대는 그런 행동이 동물 애호가가 할수있는 일은 아닌것 같다. 인간을 위한 특별한 치료목적이 있거나 동물을 꼭 돌봐주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이 희생하고 있는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 중에는 개는 애완동물의 개념을 넘어 반려동물이라며 개고기 소비를 불법화 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들은 개고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사람 취급도 하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 애완동물이든 반려동물이든 개를 선택한 인구는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잠시 흔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를들어 닭을 선택한 철수를 생각해 보자. 닭을 선택한 철수에게는 닭이 가족과 같은 존재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고 내 가족과 같이 돌봐주며 아플때는 무척이나 걱정해준다. 철수는 닭을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철수가 닭을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을 혐오스러워하고 인간도 아니라며 비난하는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인구가 많아 목소리가 크다는것 뿐, 개를 반려동물로 생각한다는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철수와 다르지 않다. 인도에서는 단순한 믿음이나 감정보다는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소와 돼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태껏 나는 인도 사람들이 소나 돼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는 타국 사람들을 혐오스러워 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애완동물은 말그대로 애완동물일 뿐이다. 다만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동안 그들을 반려동물이라 불러줄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될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이다.
행복한 뇌관리.
아래는 약 3주전 전화로 어머니와 대화한 내용을 간략히 추려놓은것이다.
사람은 항상 고민거리를 안고 산다. ‘나는 걱정거리가 너무 많다 이것저것 세어보면 서너가지가 넘는다’ 하며 투정부리고싶을때도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만 해결되면 더이상 무엇을 고민할까’ 생각했던것을 막상 해결하고 나서는 이내 곧 다른 고민거리를 끄집어내 ‘이것만 해결되면..’하는 생각을 하는 반복적인 사이클 속에 살고 있다는것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거리가 있다는것은 알겠지만 유독 나만 고민거리가 많은것 같아 보이는것은 아마도 성격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들어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낙천적이고 복잡한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자는 한가지 고민거리만을 품는 반면 성격이 꼼꼼하고 여러가지 신경쓰고 사는 체질인 사람은 그만큼 한번에 품고 사는 고민거리의 갯수가 많을수 밖에 없는것이다. 따라서 나의 고민거리가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은 안그런데 왜 나만 이렇게 고민거리가 많은것인가 하며 불공평하다 생각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정작 문제가 있다면 고민할 거리가 많은것 같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거리를 한꺼번에 품는 자신의 성품에 있는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 특히나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상당히 챙긴다. 예를들어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려 빨리 죽는다는것을 알면 탄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건강은 얼마나 챙기고들 있을까? 요즘들어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지는것을 보면 별로 챙기는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것을 알고 탄 음식은 입속에 넣지 않듯이 어떠한 시각으로 어떠한 생각을 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것을 항상 체크하고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불특정한 생각과 시각을 말한것은 상황과 문제에 따라 그것들이 달라질수 있기때문이다.
예를들자면, 하는 일이 죄다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만 거듭할지라도 자신은 아무것도 할수 있는게 없다는 식의 쓸데없는 무기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것이 중요하다. 탄 음식을 입에 넣지 않듯이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지 않도록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이 가장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만 않은경우가 일반적이니 스스로 정신건강을 챙겨주는것이 중요하다.
역시나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약 3주 전이었던가.. 당시 뉴스위크지에는 뇌건강에 관한 여러 기사들이 실렸다. 그것을 계기로 어머니와 위의 대화를 했었는데 뉴스위크지에 실렸던 어느 한 기사에서나 수년전 읽었던 어느 학술잡지에 기고된 글에서나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행복한 뇌’는 아무런 노력없이 생활해서는 쉽게 얻기 힘든것이다. ‘행복한 뇌’를 논하는 사람들의 논지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알츠하이머와 같은 특별한 뇌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행복하지 않은 뇌’는 건강하지 않다는것이다. 행복한 뇌가 바로 건강한 뇌라는것인데 이 행복한 뇌를 가지기 위해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사람들은 자신들의 ‘몸관리’를 하는만큼은 노력하지 않는것 같다.